'택배 대란' 봉합됐지만 불씨 여전···"CJ대한통운, 교섭 나서야"

노조할 권리는 얻었지만 '노동자' 해석 시각 차

2018-07-27     김혜경 기자
지난

[서울파이낸스 김혜경 기자] CJ대한통운의 영남권 '택배 대란'이 지난 20일로 일단락됐지만 불씨는 여전하다. 김정훈 민중당 국회의원과 차동호 CJ대한통운 부사장이 노사 간 중재안을 제시하면서 배송 상황은 정상화됐지만 근본 문제는 완전히 해소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국택배대리점연합회는 "합법노조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로 행정소송까지 제기한 가운데 단체 교섭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교섭 주체가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사협상은 택배 노조원이 소속된 각 대리점과 진행해야 하지만 노조 측은 개별 대리점과의 협상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원청인 CJ 측이 교섭 테이블에 나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노조설립은 허용했지만 정작 노동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 배송 전 분류 작업만 7시간···"합병 후 노동조건 악화돼"

'택배 대란'이 발생 전인 지난달 30일 택배연대노조는 노동 환경 개선과 성실 교섭을 촉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택배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의 핵심은 배송 전 분류 작업으로, 노조는 해당 시간에 대한 임금은 받지 못하는 이른바 '공짜 노동'이라 주장해왔다. 하루 근무시간 14시간 중 절반 이상을 화물터미널에서 택배 분류 작업에 투입되고 있지만 배송 시 건당 수수료만 지급받고 있다는 것. 

지난 4월 말 택배노조는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분류 작업을 거부하며 집단행동을 예고했다. 노조는 열악한 노동 환경을 바꾸기 위해서는 무임금 분류 작업부터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교섭은 시작조차 되지 않았고, 노조는 총파업에 들어갔다. 택배기사들이 노동자가 아닌 개입사업자라는 논리로 사측이 단체 교섭을 회피했기 때문이다. 

울산과 창원, 김해 등 영남권 일부 조합원들은 이보다 일찍 분류 작업을 거부했다. 영남 지역에서 우선적으로 택배 대란이 발생하자 본사 측은 대체 배송으로 맞불을 놨다. 파업 참가자에게는 물량을 배정하지 않고, 대체터미널로 옮겨 노조원이 아닌 다른 지역 직영 기사에게 일감을 맡기기도 했다. 사측의 ‘물량 빼돌리기’가 전면 파업의 도화선이 된 셈이다. 영남권에서 시작된 배송 지연 사태는 수도권 일부 지역으로까지 확산됐다. 

지난 21일부터 조합원에게 물량이 배정되면서 사태는 해소 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분류작업 개선에 대한 노사 간 공방은 현재진행형이다. 문제는 교섭 주체가 정확하지 않아 노사 협상이 미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김진일 택배연대노조 정책국장은 “다른 업체에 소속된 택배 기사들이 분류 작업에 투입되는 시간이 2~3시간 정도라면 CJ대한통운은 7시간을 소요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7시간도 평균치일 뿐 터미널에 따라 상대적으로 짧은 곳도 있지만 이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CJ대한통운에 소속된 대부분의 택배기사들은 원청인 CJ가 고용하는 것이 아닌 각 지역 대리점과 계약하는 간접 고용 형태로 종사하고 있다. 지난 2011년 12월 CJ그룹이 대한통운을 인수하면서 CJ대한통운으로 상호가 변경됐고, 2013년에는 물류회사인 CJ GLS가 흡수 합병된다. 인수·합병 전후로 노동 환경에도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 노조 측의 설명이다. 

김 정책국장은 "합병 전 대한통운 시절에는 택배기사와 직접 계약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CJ가 지금의 대리점 구조를 도입하면서 간접 고용 형태가 늘어난 것"이라면서 "대리점주들의 모임인 대리점택배연합회도 사실상 CJ가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대리점마다 공제하는 수수료 차이도 많이 난다"면서 "적은 곳은 3~5% 정도지만 많은 곳은 30%까지도 제하고 있기 때문에 기사들이 실제 지급받고 있는 비용도 천차만별"이라고 덧붙였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현재 대부분 터미널에는 택배 분류 자동화 시설이 설치돼있는데 택배 물량이 가장 많은 화요일에도 소요 시간이 3시간 내외"라면서 "자동화 시설이 없는 나머지 20%의 터미널에도 올해 말까지 설치를 완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배송 전 택배 분류 작업 소요 시간이 7시간 걸린다는 것은 훨씬 옛날의 이야기"라면서 "전 터미널에 자동화 시설이 완료되면 택배 기사들의 노동 강도가 훨씬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 정부에서 인정한 '택배 노조'···택배대리점연합회 "정당성에 의문"

현재 대리점주들의 모임인 대리점연합회는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택배기사들이 노동자 지위가 아니기 때문에 이들이 만든 노동조합도 정당하지 않다는 것. 이들을 포함해 실제로는 회사의 지시와 임금을 받는 노동자이지만 법적으로는 개별 사업자로 분류되는 직업군이 있다. 바로 '특수고용노동자'들이다. 근로 계약이 아닌 위탁 계약을 체결했다는 이유로 노동법의 적용을 받지 못한다. 무늬만 '사장'인 셈이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국가인권위원회는 노동 3권 보장을 위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으로 '근로자' 정의에 특수고용노동자가 포함되도록 하라는 권고안을 냈다. 해당 권고를 노동부가 수용하기로 결정했고, 택배기사들의 근로자성을 일부 인정해 노조 설립을 허용한 바 있다. 

현행 노조법 제 2조 4호에는 "노동조합이라 함은 근로자가 주체로, 자주적으로 단결해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분류 작업 문제부터 노사 협상을 통해 해결해야 하지만 교섭 상대가 명확하지 않는 점이 문제다. 대다수 택배 기사들은 CJ대한통운과 직접 근로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아닌 사업자와 계약을 맺은 대리점과 용역 계약을 맺는다. 노조 측은 실질적으로 택배기사들의 근로조건을 정할 권한을 원청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섭 대상을 CJ대한통운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CJ 측은 택배 기사들이 각 대리점과 협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CJ대한통운 관계자는 "교섭 대상이 각 대리점 혹은 대리점연합회라는 것은 이미 정해진 사안"이라면서 "노동부에서도 유권해석을 내린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앞서 대리점연합회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내부 문건이 폭로돼 논란이 인 바 있다. '택배연대 무자격'을 주장하는 내용이 골자다. 김 정책국장은 "해당 문건은 대리점연합회가 각종 소송을 진행할 때 참여하는 법무법인 태평양에서 만든 것"이라면서 "태평양 측에서 대리점주들을 대상으로 교양 자료라는 명목으로 만들어 배포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