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전환' 핵심 ESS 살아날까···정부 발표에 쏠린 눈
11일 오전 10시 화재 원인·안전 기준 등 대책 발표 일부 사업장서 시공·운영사-배터리 제조사 갈등 격화
[서울파이낸스 김혜경 기자] 2017년부터 연이어 발생했던 에너지저장장치(ESS) 화재조사 결과가 오는 11일 공개된다. 정부는 지난달 2일 민관조사위원회의 중간진행 상황을 설명하면서 6월 초 최종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당초 예상보다 발표 시기가 늦어진 이유는 최근 경북 칠곡군에서 발생한 화재와 맞물려 안전 기준 등 대책 마련에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이 소요된 것으로 보인다.
배터리제어시스템(BMS)을 비롯한 기기 오류와 서지(Surge)·접지 문제 등 전기적 요인, 배터리 셀 내부 화학적 결함, 부실시공 등 복합적인 화재 요인에 무게가 실린다. 일부 사업장에서는 사고 원인을 놓고 배터리 제조사와 시공·운영업체 간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이번 정부 발표에 따라 새로운 기준에 따른 재가동 여부와 함께 ESS 시장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10일 산업통상자원부와 업계에 따르면 현재까지 누적된 ESS 사고는 총 22건으로, 최근 화재는 지난달 4일 오후 3시 40분께 칠곡군 가산면 태양광 발전시설에서 발생했다. 전기적 요인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피해액은 6억여원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다중이용시설과 별도건물에 설치돼 있지 않은 공장용 ESS에 가동 중단을 요청한 상태다. 현재 총 1490곳의 ESS 사업장 중 522곳이 가동 중단된 상황이다.
ESS는 '전기를 담는 그릇'이다. 이중 배터리가 포함된 ESS는 'BESS(Battery Energy Storage System)'로 불린다. BESS는 셀·모듈·랙·BMS·스위치기어·배전함 등으로 구성되고, ESS가 들어간 건물 내부는 ESS실과 전력변환장치(PCS)실, 전기실 등으로 나눠져있다. 하드웨어에는 배터리·PCS·건물 등이, 소프트웨어에는 BMS·EMS·PMS가 포함된다. 용도에 따라 신재생에너지 연계용과 전기요금 절감을 위한 피크저감용, 주파수 조정용 등으로 나뉜다.
특히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발생한 사고들의 공통점은 안전 진단을 실시했지만 화재가 발생했다는 것. 칠곡 화재를 포함해 일부 사업장에는 배터리 제조사들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등 자체 보강 조치를 실시했음에도 사고가 발생해 논란이 됐다. 이를 두고 제조사와 시공사의 입장이 갈리는 등 제대로 된 원인 규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 이유다.
조사위에 참여 중인 한 관계자는 "배터리 제조사들의 자체 점검이다 보니 구체적인 화재 원인에 따른 완벽한 진단이 이뤄졌다고 보기는 힘들었을 것"이라면서 "원인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업체별 입장이 다를 수는 있다고 본다. 조사 결과 발표 시에 이같은 내용도 포함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22건의 화재 사고를 원인별 나눠보면 크게 △전기적 위험 요인 △화학적 요인 △기계적 요인 △환경적 요인 △장치 오류 등으로 분류된다. 올해 초 열린 에너지기술평가원의 'ESS 화재 안전사고 대응전략 세미나' 자료에 따르면 △BMS·PCS 오동작 △배터리-팩-랙 등 과전류 △배터리 절연 △부실공사 등이 주요 원인으로 추정됐다. 지난해 여름 발생한 일부 사고들을 살펴보면 BMS 전원 미인가 상태에서 화재가 발생했거나 절연거리 근접 등 설계상 문제, PCS 파손 등이 원인으로 제기됐다.
지난해 7월 21일 발생한 거창군 풍력발전소 ESS 화재현장조사서에 따르면 배터리 랙의 폭발로 화재가 발생했지만 발화 장소의 구체적인 셀 단위와 원인을 단정할 수는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배터리 랙은 직렬로 연결된 11개의 모듈과 랙 보호장치로 구성된 장치다. 22개의 리튬 셀이 모여 한 개의 모듈을 형성하며 1 랙은 11개의 모듈(242셀)로 이뤄진다. 해당 조사서에는 "우측라인 배터리 랙에서 검은 연기가 발생한 장면이 CCTV에 녹화됐지만 이 같은 모습이 포착됐을 때 랙 자체 모니터링에서는 이상을 감지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기재돼 있다.
피해가 컸던 사고 가운데 하나였던 울산 가스공장 ESS 설비 화재의 경우 발화 시작부터 사고가 완전히 종결될 때까지 하루가 소요됐다. 피해액은 48억원으로, 6000여개의 리튬배터리가 불에 탔다. 사고 관련 자료에 따르면 화재가 발생한 1월 21일 완충 상태에서 오전 9시 17분부터 20분까지 BMS 알람 및 화재 경보기가 울렸다고 기재돼있다.
모듈온도 22~23도 초과 시 퓨즈가 끊어져 전류가 차단되고, 65도에서 자동적으로 전 시스템이 멈추는 예방 설비가 적용됐지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거나 리튬 배터리의 열 폭주 현상이 설비 한계치를 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리튬전지는 이상 발생 시 전력계통에서 분리하더라도 내부에 에너지가 남기 때문이다. 화재와 폭발, 유해가스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시스템 규격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다.
완충 상태에서 BMS 등의 오류로 과충전하면서 과열이 발생했거나 배터리 셀 내부 결함으로 충전상태를 견디지 못했다는 추정이다. 지난 4월 열린 'ESS 화재사고 안전성 강화 개선제안 검토' 워크샵 자료에는 'BMS 오류에 의한 만(full) 충전 시 추가 충전을 방지하기 위한 인터록 회로 보완, 방전 정도에 따른 불감대 설정으로 잦은 재충전을 방지 할 것'을 제안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국내 대학 한 교수는 "만약 배터리에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BMS 등 제어 기능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시스템 차단으로 사고가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데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곳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배터리 셀 전압 불균형 문제도 제기됐다. 전압 균형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알아보려면 각 배터리 셀에 센서를 부착해서 확인해야 하는데 작업 미흡으로 사전에 불균형을 발견하지 못했고 결국 화재로 이어졌다는 추정이다.
화재가 발생한 일부 ESS 설비는 '사용 전 검사'를 받지 않은 곳도 있었다. 조사위 한 관계자는 "초창기에 ESS를 설치할 때는 검사 대상 설비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용 전 검사가 의무 사항은 아니었다"면서 "대용량 ESS 설비 수가 늘어나면서 사용 전 검사를 받는 방향으로 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화재 시 신속한 진화를 위한 소방 기준 마련도 시급하다. 한 일선 소방서 관계자는 "설비 자체에 소화약제가 구비돼 화재 발생 시 분사되지만 배터리 내부로 제대로 침투되지 않는 문제점이 있다"면서 "배터리가 완충 상태일 경우 에너지가 내부에 남아있기 때문에 현재 구비된 약제로는 진압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추가 폭발 발생 위험이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대량의 물을 이용해 진화를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