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 여윳돈 192兆 '2배↑'···정부 11년만에 '순조달' 전환
지난해 가계·비영리단체 순자금 운용액 전년比 100조 늘어 가계, 소비 축소 주식투자 '열풍'···고수익 금융자산 투자 확대 정부·기업, 자금 악화에 조달 규모↑···'코로나 리스크' 반영
[서울파이낸스 박성준 기자] 지난해 코로나19 사태로 국내 여유자금이 전년 대비 큰 폭으로 늘었다. 특히 가계의 경우 정부 긴급재난지원금 등으로 소득이 크게 확대된 데 반해 소비를 줄이고 주식투자에 나서며 여윳돈은 전년 대비 2배 수준으로 확대, 역대 최대규모를 기록했다. 반면 코로나19 여파로 기업들의 자금 사정은 역대 최악을 기록했으며, 정부 역시 코로나19 지출로 지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 순조달로 전환했다.
한국은행이 8일 공개한 '2020년 자금순환(잠정)'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순자금 운용 규모(자금운용-자금조달)는 83조5000억원으로 전년(64조2000억원)보다 19조3000억원 확대됐다. 순자금 운용액은 예금·채권·보험·연금 준비금으로 굴린 돈(자금운용)에서 금융기관 대출금(자금조달)을 뺀 금액을 말하며, 이를 경제주체의 여유 자금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여윳돈이 마이너스일 경우 순자금조달로 표현한다.
먼저 지난해 가계(개인사업자 포함) 및 비영리단체의 순자금 운용액은 192조1000억원으로 전년 92조2000억원과 비교해 99조9000억원(108.4%)이 늘었다. 1년 새 자금 운용 규모가 무려 2배 늘면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가계·비영리단체의 자금운용은 365조 6000억원, 자금조달은 173조5000억원이었다. 자금 운용·조달·순운용 규모 모두 지난 2009년 통계편제 이후 최대 규모다.
이처럼 순운용 규모가 큰 폭으로 늘어난 데에는 대면 서비스 중심의 소비 대신 부동산과 주식 투자 등에 적극 나섰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가계처분가능소득은 월평균 425만7000원으로 전년(408만2000원) 대비 늘었지만, 민간최종소비지출은 같은 기간 931조7000억원에서 894조1000억원으로 감소했다. 여윳돈은 지분증권 및 투자펀드 등 고수익 금융자산 투자로 흘러들었다.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지난해 가계운용 현황으로는 △금융기관 예치금(174조) △보험 및 연금 준비금(73조) △채권(11조) △지분증권 및 투자펀드(56조) △국외운용(19조) 등이었다. 이중 지분증권 및 투자펀드는 지난 2019년 -5조9000억원을 기록했지만, 1년새 60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지난해 가계 금융자산 4539조4000억원 가운데 주식 및 투자펀드의 비중은 21.8%로 전년(18.1%)에 비해 3.7%포인트(p) 커졌으며, 주식만 보더라도 15.3%에서 19.4%로 4.1%p 비중이 더욱 확대됐다. 가계·비영리단체의 금융자산을 금융부채로 나눈 값은 2.21배로 전년말(2.12배)보다 상승했다. 한은은 주가 상승 등에 따른 결과라고 설명했다.
가계와 달리 기업(비금융법인)들은 자금운용보다 대출 중심으로 자금조달 증가폭이 더욱 컸다. 코로나19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유동성 확보에 적극 나선 결과다. 지난해 기업 순조달규모는 88조3000억원으로 전년(61조1000억원)보다 조달 규모가 27조원 가까이 늘었다. 이는 지난 2011년 74조6000억원의 순조달 기록 이후 10년 만에 최대다. 한은은 전기전자 업종 중심의 영업익은 개선됐지만, 단기 운전자금 및 장기 시설자금 수요가 확대된 것으로 분석했다.
특히 결제성예금 및 단기저축성예금 운용이 크게 확대됐다. 결제성예금은 지난 2019년 10조7000억원 증가했지만, 2020년에는 20조2000억원으로 약 2배 가량 확대됐고, 1년 이하 단기저축성예금 증가액도 같은 기간 6조9000억원에서 95조3000억원으로 13.8배 폭증했다.
정부도 전년 29조5000억원의 순운용에서 27조1000억원의 순조달로 전환했다. 코로나19로 소비·투자를 늘리고 코로나19에 따른 이전지출이 크게 확대됐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가 순조달로 전환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순조달을 기록했던 지난 2009년 이후 11년 만이다. 정부최종소비지출(소비)에선 329조3000억원에서 349조7000억원으로 증가했고, 총고정자본형성(투자)는 98조1000억원에서 101조3000억원으로 증가했다. 정부 조달·운용 규모 역시 모두 통계편제 이래 최대다.
방중권 한은 자금순환팀장은 "코로나19 여파로 재난지원금 등 가계로 이전지출이 많이 발생했는데, 이전지출을 위한 재원 조달은 보통 세금을 걷거나, 채권을 발행해서 조달한다"라면서 "하지만 세입의 경우 금융 부문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자금 순환에 나타나지 않으며, 채권을 발행해 조달한 경우 자금순환 통계에 나타난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지난해 말 총금융자산은 전년말 대비 2163조8000억원이 증가한 2경764조9000억원을 기록했다. 자금순환통계에 나타나는 모든 경제부문이 보유한 금융자산의 합계를 말하는 것으로, 국내 부문은 물론 국외(비거주자) 부문도 포함한다. 지분증권 및 투자펀드 비중이 2.0%p 증가한 반면, 채권 비중은 0.7% 하락했다. 방 팀장은 "총통화규모, 부채규모 증가와 함께 경제 규모 상승에 따른 결과"라며 "주식 가격 상승으로 증가 추세가 더욱 빨라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