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소성 사라진다···건설업계, '하이엔드 브랜드' 두고 고심

[서울파이낸스 노제욱 기자] 대형 건설사 중심으로 서울 한강변‧강남권 등 주요 정비사업 수주를 위해 내세웠던 '하이엔드 브랜드'가 리모델링이나 지방 정비사업에도 적용되고 있다. 수주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하이엔드 브랜드를 내세워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그 적용 범위가 점차 넓어지면서 브랜드 희소성이 퇴색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24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서울 용산구 이촌동 한가람아파트에 현대건설이 하이엔드 브랜드 '디에이치' 제시를 검토 중이다. 해당 단지는 입지 등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곳이지만, 그동안 주요 재건축‧재개발 단지에 하이엔드 브랜드가 적용됐음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현상이다.

지방에서도 하이엔드 브랜드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지난 3월 DL이앤씨는 부산 해운대구 우동1구역에 비수도권 최초로 '아크로' 적용을 약속했다. 이에 자극받은 부산 인근 정비사업지는 물론 광주 등 지방에서 시공사에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을 요구하고, 이를 거절할 시 시공사 해지로 이어지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하이엔드 브랜드의 적용 범위가 점점 넓어져 가는 추세다. 건설업계에서는 주요 사업지가 얼마 남지 않으면서 경쟁이 심화됨에 따라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조합원들의 눈높이가 높아진 부분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A 건설사 관계자는 "소위 '알짜' 입지라고 할 수 있는 사업지가 서울을 비롯해 몇 안 남은 상황"이라며 "경쟁이 심해지면서 시공사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어필할 수 있는 카드 중 하나로 하이엔드 브랜드를 '남발'이라고 보일 만큼 적극 활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단지 브랜드가 집값에 영향을 준다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조합원들이 먼저 요구하는 경우도 다수 있는 상황"이라며 "시공사 입장에서 사실상 조합의 요구를 거절하기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해당 건설사들은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 여부를 간단하게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부 위원회 등을 통해 입지, 발전 가치, 주변 시세 등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한다는 입장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 여부는 회사 내부에서 브랜드 심사를 거쳐 결정되는 부분"이라며 "입지, 향후 발전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서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남발이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DL이앤씨 관계자도 "내부 '브랜드 커미티'를 통해 입지, 주변 시세 등을 고려해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 여부를 결정한다"며 "아크로를 적용하기로 한 부산 해운대구의 경우 시세가 많이 오른 지역이고, 이미 고급 주택 단지들이 위치한 곳이기 때문에 아크로 적용에 문제가 없다고 본다"고 답했다.

그러나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이 잦아지면서 애초 취지인 '희소성'이 빛을 바랜다는 지적은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또한 적용 범위가 광범위해지면 기존 하위 브랜드 단지에서 브랜드 교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올 가능성도 커 건설사 입장에선 고민이 깊어질 전망이다. 하이엔드 브랜드 위에 또 다른 브랜드가 탄생할 가능성도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 

B 건설사 관계자는 "'아무나 살 수 없는 곳'이란 이미지를 주기 위해 하이엔드 브랜드를 들고나온 것인데 그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며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 범위가 넓어지면서 기존 하위 브랜드 단지들에서도 브랜드 교체 요구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C 건설사 관계자도 "최근 건설사들의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 기준이 무너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하이엔드 브랜드가 하위 브랜드화되고, 기존 하위 브랜드는 사라지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결국 하이엔드 브랜드 위에 또 다른 브랜드가 생길 가능성도 커지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