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美 반도체 기밀 요구 D-7···깊어지는 삼성·SK의 고민

잇따라 태도 바뀐 '비메모리 1위' TSMC에 국내 기업 부담 가중 삼성·SK하이닉스 "정부와 논의 중"···업계 "정보 수위 조절할 듯"

2021-11-01     오세정 기자

[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미국 정부가 요구한 반도체 정보 제출 마감 시한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오자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특히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대만 TSMC의 갈지(之)자 행보가 연일 외신들에 의해 보도되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의 결정에도 관심이 쏠린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은 정부와 협의를 지속하며 제공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가 TSMC를 비롯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글로벌 반도체 업체들에 요구한 반도체 정보 제출 마감 시한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제출 기일은 오는 8일이다.

앞서 지난 9월 미 백악관과 상무부는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 해소 등을 위해 삼성전자 등 업계 관계자들을 소집해 회의를 열고, 반도체 업체들에 '주요 고객 3사와 주문량', '주력제품 재고', '증설 계획' 등 기업의 핵심 영업기밀에 대한 설문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제너럴모터스(GM), 포드 등 미국 자동차 회사들의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을 해결하기 위한 공급망 투명성 제고 차원이라는 게 미 정부의 입장이다. 

그러나 기업들이 정보를 제출할 경우 미 상무부가 반도체 기업들의 내부 현황을 꿰뚫게 되는 데다 자료가 미국 업체에 누출되면 TSMC나 삼성전자 같은 외국 업체는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업계는 우려한다. 여기에 표면적으로는 '요청'의 형식이지만 협조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한 강제수단을 재차 언급하며 사실상 기업들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기업들도 정보 제출을 피하기 힘든 상황에 놓인 모습이다. 

이 가운데 TSMC의 행보에 대해 상반된 보도가 잇따라 나오며 주목된다. 앞서 지난달 23일 대만매체 중시신문망은 "TSMC가 미 상무부 요구에 따라 반도체 공급망 정보를 제출키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지난달 24일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산하 금융 미디어 중국기금보도 "TSMC가 정보 제출 시한인 다음달 8일까지 미 상무부에 반도체 재고, 주문, 판매 등 공급망 관련 정보를 제출하기로 했다"고 알렸다. 

또 지난달 27일에는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은 "TSMC가 고객 기밀 정보를 미 정부에 제공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TSMC는 미국의 정보 요청에 어떻게 대응할지 고심 중이지만 결국 고객 기밀 정보를 절대 넘겨주지 않을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며 "고객과 주주들의 이익을 해치는 어떤 행동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는 내용을 전했다.

불과 일주일도 안된 사이에 전혀 상반된 보도가 잇따라 나온 것인데 비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인 대만 TSMC의 기조는 인텔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도 큰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TSMC가 자료를 제출할 경우 삼성전자에 대한 압력이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21일 미 상무부는 인텔, GM, 인피니온, SK하이닉스 등이 관련자료를 제출키로 했다고 공개하면서 나머지 반도체 업체들을 직접 압박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우리 기업들은 미국의 요구에 응하면서도 주요 고객 정보같은 민감한 정보는 최소한으로 제공하는 방향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내부적으로는 물론, 정부와 협의를 지속하며 정보 제출 범위를 조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김기남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26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한국전자전 2021'에서 기자들과 만나 "(반도체 정보 공개 요구에)여러 가지를 고려해 차분히 대응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은 같은달 28일 '반도체대전 2021'에서 "내부적으로 검토 중이며, 정부와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리 정부 역시 미국 반도체 공급에 협력하면서도 한국 기업의 불이익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5일 미국 상무부와 진행한 반도체 관련 국장급 화상회의에서 국내 업계의 우려를 재차 전달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이 요구한 정보들은 기업의 핵심 기밀로, 이는 반도체 기업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만큼 민감한 내용을 배제하는 방향이 될 것"이라며 "개별 기업으로서 대응하기 보단 우리 정부와 긴밀히 협의하면서 정보 수위를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차량용 반도체 수급문제를 들어 사실상 메모리 반도체를 주력으로 하는 우리 기업들에 기밀 정보를 요구하는 건 다른 의도가 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면서 "미국이 반도체 패권을 쥐고 중국을 견제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