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승부사' 구본준식 정기인사
올해 LG그룹으로부터 독립 출범한 LX그룹의 정기인사는 예상대로 성과주의를 반영했지만, 지주사인 LX홀딩스 임원들이 승진 대상에서 빠진 점은 의외였다.
LX그룹은 LX인터내셔널, LX판토스, LX하우시스, LX세미콘, LXMMA 등의 계열사 상무 6명을 전무로 승진시켰다. 이 가운데 LX하우시스에서는 2명이나 승진했고 손자회사인 LX판토스에서도 승진자가 나왔지만, LX홀딩스에서는 승진자가 없었다.
LX그룹 출범 직후인 5월 최원혁 LX판토스 사장과 박종일 LX MMA 부사장에 대한 승진 인사를 내긴 했지만, 그야말로 그룹 출범을 알리는 '신고식' 수준의 규모였다.
그래서 이번 첫 정기인사에서는 성과주의를 기반으로 한 임원 인사가 주를 이룰 것이라는 예상과 함께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LX홀딩스의 인사에 더욱 관심이 쏠렸다.
LX홀딩스의 기획, 전략, 재무 부서는 그룹 계열사 전반을 총괄하면서 그간 LG로부터의 계열분리 작업에 있어서도 공로가 컸다는 평가다. 이에 LX홀딩스의 승진자가 얼마나 나올지에 대한 재계의 관심은 작지 않았다. 아울러 이번 정기 인사의 방점이 어디에 찍히는지에 따라 구본준 LX그룹 회장의 경영 방향성도 추정해 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결과적으로 예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셈이 됐다.
성과주의에 방점을 두긴 했으나, LX홀딩스의 전략, 기획, 재무라인의 성과 평가가 읽혀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LX홀딩스에 대해 별도로 임원 인사를 낼 계획은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LG그룹으로부터 갓 독립한 LX그룹은 성장엔진 가동을 통한 그룹 규모 확대, LG그룹과의 대주주간 지분 정리 등 여러 현안과 마주하고 있다.
LX그룹은 홀딩스와 자회사들의 자산 총액을 합해 약 8조원 안팎으로 재계 50위권에 들어가는 수준에 그친다. 삼성·현대차·SK·LG·롯데·포스코·GS·한화·현대중공업·신세계 등 10대 주요 그룹과 견줄 수준이 아닐 뿐더러, 삼천리·OCI·세아·하림·영풍 등 이른바 중견기업들과도 자산규모를 놓고 순위 경쟁을 할 정도다.
"싸움닭 같은 투지만 있다면 어떤 승부도 이길 수 있다."
이는 구본준 회장이 2011년 LG전자 부회장 시절이었던 2011년 5월 LG전자의 노조간부 체육대회에서 임직원들에게 전한 인사말이다. 더욱 더 독하게 실행해 진정한 승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도록 다같이 뛰자며 당시 LG전자 구성원들에게 싸움닭의 투지를 요구한 이 말은 재계에서 두고두고 회자됐다. 그에게 '승부사', '싸움닭'과 같은 수식어들이 붙게된 배경 중 하나이기도 하다.
현재 시점에서 승부사 구본준 회장의 치열한 승부처는 이제 막 닻을 올린 LX그룹의 외형적 성장이다. 최근 LX하우시스가 한샘 인수전에 과감히 뛰어들었던 것 역시 승부사적 기질이다.
아울러 이같은 LX그룹의 본격적 성장을 논하기에 앞서 조카인 구광모 LG 회장과의 지분 정리 역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구광모 회장은 LX홀딩스가 주식회사 LG에서 인적분할하는 과정에서 LX홀딩스 지분 15.95%를 보유하며 최대 주주에 올라섰다. 독립 과정에서 구본준 회장 역시 LG 지분 7.57%를 갖게 됐다.
조카와 삼촌 지간인 두 회장이 서로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정리해야 완전한 계열 분리가 이뤄지게 된다. 이 과정에서 구본준 회장의 장남인 구형모 LX홀딩스 상무가 직접 사촌형인 구광모 LG회장과 지분 교환을 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지분 정리와 구 상무 중심의 지배구조 구축을 동시에 이룰수 있다는 점에서다.
다만,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보유한 LX홀딩스 주가가 높아질수록 지분 교환은 해결하기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소액주주들은 LX그룹 오너 일가가 인위적으로 주가를 누르고 있는게 아니냐며 청와대에 국민청원까지 올렸다.
그룹 출범 후 첫 정기 인사에서 승부사 구본준 회장은 승진 대상에 LX홀딩스 임원은 포함시키지 않았다. 자신의 아들인 구 상무는 논외로 치더라도 이사급에서조차 LX홀딩스 소속 승진자는 나오지 않았다.
이는 전략·재무통들의 사기를 붇돋워 가며 시장에서 예상하는 뻔한 방식으로는 지분 문제를 해결하지 않겠다는 승부사의 의중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구본준 회장의 승부사다운 해법이 기대된다.
기업시장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