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단체 "중대재해법 처벌 공포에 혼란"
경총·전경련·산업연합포럼 성명 "안전 의무 구체적 명시 필요"
[서울파이낸스 김호성 기자]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에 들어간 27일, 주요 경제단체는 깊은 우려를 표명하면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 개선을 공개 촉구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근로자의 사망 등 산업 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책임자 등이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토록 하는 것이 골자다. 기존의 산업안전보건법으로는 중대재해에 대한 실질적인 책임이 어렵다는 공감대를 토대로 제정됐다.
중대재해처벌법상 중대재해는 중대산업재해와 중대시민재해로 나뉜다. 이 가운데 중대 시민재해의 경우 경찰이 수사권을 갖고, 중대산업재해와 관련해서는 고용노동부가 관리·감독 권한을 갖는다.
중대산재는 △사업장에서 사망자 1명 이상 발생 △동일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 2명 이상 발생 △화학 물질 등 동일한 유해 요인으로 직업성 질병자 1년 내 3명 이상 발생한 경우를 뜻한다. 시행령에서는 급성중독, 화학적 인자, 열사병, 독성 감염 등 각종 화학적 인자에 의한 24개 직업성 질병에 대해서도 업무 관련성이 확인될 경우 중대산재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했다.
경총은 이날 경영계의 입장을 내고 "기업 입장에서 무엇을, 어느 정도 이행해야 법 준수로 인정되는지 알기 어려운 혼란에 처했다"고 밝혔다. 이어 "입법 보완없이 법률이 시행됐고, 정부가 마련한 해설서 또한 모호하고 불분명한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특히 경총은 "중대재해를 근절하기 위해 기업의 안전관리 역량이 더욱 강화될 필요가 있음은 경영계도 적극적으로 공감한다"면서 "그러나 과도한 처벌 수준과 법률 규정의 불명확성으로 의무 준수를 위해 큰 노력을 하는 기업조차도 처벌의 공포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건설, 철강업 등 주요 기업들이 안전담당 이사(CSO)를 선임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CSO를 따로 두더라도 대표이사가 처벌을 피해가기 어려운 현실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고용부가 지난 17일 배포한 중대재해처벌법 해설서에 따르면 "안전담당이사라는 명칭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의 의무가 면제된다고는 볼 수 없다"고 했다. 안전 담당 이사가 따로 있어도 대표이사가 궁극적으로는 최종 결정권자이기에 책임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경총은 "정부가 법률의 불명확성을 해소하기보다 중대재해 발생 기업에 대한 엄정 수사 기조만을 강조하고 있다"며 "경영계는 법 적용을 둘러싼 많은 혼란과 이로 인한 심각한 경영 차질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경총은 또 "산재사고에 대한 모든 책임을 경영자에게만 묻는 중대재해처벌법의 문제점이 합리적으로 개정되는 입법 보완이 하루속히 이뤄지기를 촉구한다"며 "중대재해의 문제를 기업과 경영자 처벌로 해결하려는 것은 산재 문제의 근본적 해법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사 범위는 사고 원인과 직접 관계되는 의무사항으로 한정해야 한다"며 "처벌 목적의 과도하고 무리한 경영책임자 수사는 없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역시 성명을 내고 "산업현장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제도 개선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며 "선진국처럼 사후처벌보다 사전예방 위주로 안전 보건 체계를 확립해 기업경영 위축 등의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경련은 아울러 "적용 대상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의무 규정이 모호한 탓에 일부 현장에서 1호 처벌 대상을 피하고자 사업을 중단하는사태마저 벌어지고 있다"며 "경영자에게 명백한 고의 과실이 없는 한 과잉 수사, 과잉 처벌이 이뤄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산업연합포럼도 입장문에서 "여야 대선 후보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 내 보완 입법을 공약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포럼은 "중대재해처벌법이 해석이 엇갈릴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해 사업주 혹은 경영책임자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의무를 지는지 정확히 알수 없다"며 "1년 이상의 징역을 부과하는 처벌 조항도 과실치사가 5년 이하 징역인 것과 비교하면 형벌의 비례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어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부담하고 처벌 대상이 되는 경영책임자를 '사업을 총괄하는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규정해 구체적이지 않다"며 "처벌의 인적 범위가 무한정으로 확대될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