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Mr. 쓴소리' 이동걸 "산은 이전, 국가경제에 마이너스"
尹정부 출범 맞춰 사의···재무개선·신산업 육성 '성과' 구조조정 '절반의 성공'···11곳 정상화 vs 3곳 실패 국책은행 부산이전 반대하며 '부울경 특혜론' 주장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굵직한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경쟁당국, 기업 노사 등에 쓴소리를 마다않던 이동걸 회장이 윤석열 정부 출범을 앞두고 산업은행을 떠나기로 했다. '정부와 정책철학을 공유하는 사람이 회장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순리'라며 최근 사의를 표명한 이 회장은 떠나는 순간까지 산은 부산이전 반대, 산업재편 필요성 등 신정부를 향한 쓴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이동걸 회장은 2일 최근 사의를 표명한 것과 관련해 기자간담회를 개최하고 지난 4년8개월간의 재임기간 소회를 밝혔다. 대표적인 민주당 인사로 분류되는 이 회장은 2017년 9월 취임한 후 4년8개월간 산업은행을 이끌었다. 2020년 한 차례 연임한 이 회장의 임기는 내년 9월까지로 1년4개월 남았으나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퇴임을 결정했다.
이 회장 지휘 아래에서 산업은행이 추진한 부실기업 구조조정은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7년 취임 당시 10~15개에 달했던 부실기업 중 두산중공업, 대우건설, 한국GM, 금호타이어 등 11개 기업에 대한 정상화와 매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특히, 1년11개월 만에 채권단 관리체제를 조기 졸업한 두산중공업의 경우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에너지 기업으로의 전환을 주도했다.
자본잠식에 빠진 아시아나항공 매각 과정에서 대한항공과의 합병이라는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플랜B'를 내놓기도 했다. 양대 항공사 간 합병이라는 '빅딜'을 통해 항공산업 구조 재편을 꿰했다는 점에서 '묘수'로 꼽히기도 했다.
다만, 그동안의 구조조정이 모두 성과를 거둔 것은 아니었다. 대한-아시아나항공과 함께 조선업 빅딜로 꼽혔던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합병은 결국 유럽연합(EU) 경쟁당국이 기업결합을 승인하지 않으면서 무산됐다. 묘수로 꼽히던 빅딜의 경우 각국 경쟁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만큼 리스크가 큰 대안이었는데, 결국 합병이 무산되며 '악수'가 된 셈이다. 이 밖에 쌍용자동차와 KDB생명의 새주인 찾기도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이 회장도 간담회에서 구조조정에 실패한 기업들에 대해 "결과적으로 저는 실패했다"면서 "굉장히 안타깝고 개인적으로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산업재편을 목적으로 하는 빅딜을 추진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을 함께 전했다. 그는 "현재 대한민국 조선업 3사(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는 출혈경쟁으로 유지되고 있는데, 빅3체제를 빅2체제로 전환하지 않으면 몇년 후 대규모 조선업 부실 재발 위험이 있다"며 "현재의 3사체계로는 해결방법이 없어 빅2를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빅2로의 재편을) 다음 정부에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4년8개월간 자본잠식 직전이던 산업은행의 재무구조와 수익성을 개선하고, 벤처기업 육성 등 신성장 동력을 발굴한 점 등은 최대 성과로 꼽힌다. 실제 이 회장 취임 전인 2016년 말 산업은행은 조선업 구조조정 실패로 3조원 규모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 2017년부터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지난해에는 2조5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국내 최대 벤처투자 플랫폼 넥스트원·넥스트라운드·넥스트라이즈를 운영하며 유망 스타트업 육성에도 주력했다. 기존 제조업 중심 산업에서 벗어나 4차 산업혁명 중심의 벤처기업을 육성해 국가경제를 위한 미래 먹거리를 발굴해야 한다는 게 이 회장의 철학이었다. 실제 벤처기업 투자유치 플랫폼 넥스트라운드를 통해 올해 1분기까지 545회에 달하는 기업설명회(IR)가 열렸고, 4조1000억원에 달하는 투자금이 모였다.
이같은 성과에 대해 이 회장은 "2017년 9월 취임하면서 산업은행 창고에는 정리되지 않은 부실기업들이 즐비했고, 국가경제를 위한 미래 먹거리에 대한 투자는 빈약했으며 산업은행 금고는 텅 비어서 자본잠식 직전 수준이었다"며 "지난 5년간 산은이 한 일이 없다는 등 도가 넘는 정치적 비방은 산은 조직과 3300명 직원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판했다.
5년간의 성과와 소회를 밝힌 이 회장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추진하고 있는 산업은행 부산 이전과 관련해서는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 회장은 "산업은행 회장으로서, 금융학자로서 얘기하면 산업은행 지방 이전은 결코 가벼운 사안이 아닌데, 논리적인 근거나 정책적 논의 없이 주장만 되풀이되고 있다"며 "무리하게 강행하고 나중에 심각한 폐해가 발생했을 때의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부산·울산·경남 지역에 대해선 자생력을 키워야할 시점이라고 했다. 그는 "부울경 지역은 박정희 (전) 대통령 시대 이래 산업화 과정에서 가장 큰 특혜를 받은 곳이고, 국가의 집중 지원이 있었기에 (발전이) 가능했다"면서 "그러면 부울경 스스로 자생하려는 노력을 해야지 다른 데(서울)서 더 빼앗아 가려고 하면 안 된다"고도 했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이름으로 추진되고 있는 산업은행 부산 이전이 지역경제는 물론 국가경제에도 '마이너스'가 될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검토돼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한편, 이 회장이 사의를 공식 표명한 가운데 실제 퇴임 시점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산업은행법에 따르면 산업은행 회장은 금융위원장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면한다. 이에 따라 이 회장이 금융위원장에 사의를 표명하면 금융위원장이 청와대에 보고를 하고, 대통령이 최종적으로 사표를 수리해야 한다. 현재 이 회장 후임으로는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 강석훈 전 청와대 경제수석, 황영기 전 금융투자협회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