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건전성' 고비 넘긴 보험사, 3분기 RBC 위기 또 온다
금융당국, 2분기부터 자본건전성 규제 완화안 적용 "금리인상 가팔라···인상 감내 어려운 곳 생길 수도" "LAT 잉여액 충분한 대형사 등 상대적으로 안정적"
[서울파이낸스 유은실 기자]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자본건전성 수치 하락에 휘청이던 보험사들이 일단 급한 발등의 불은 껐다. 금융당국이 LAT(책임준비금 적정성평가 제도)에서 발생하는 잉여액의 중 일부를 인정해주면서, 금리인상발(發) 자본건전성 악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숨통을 틔어주면서다.
다만 앞으로 금리인상 속도가 더욱 가팔라질 경우 올 3분기 또다시 RBC(지급여력비율) 고비를 맞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금리인상 폭'과 '보험사별 자본 포트폴리오'에 따라 보험사 간 희비가 엇갈릴 전망이다.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지난 9일 '보험업권 리스크 점검 간담회'를 열고 금리상승으로 자본건전성 관리 부담을 겪고 있는 보험사들을 위해 LAT 잉여액의 40%까지를 RBC의 가용자본으로 인정하기로 했다. 이번 완화안은 올해 2분기부터 적용된다.
RBC비율은 보험사가 계약자에게 보험금을 한꺼번에 지급할 수 있는 돈이 마련돼 있는지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건전성 평가 지표다. RBC비율의 분모는 '요구자본', 분자는 '가용자본'으로 계산되는데, 금융당국은 LAT 잉여액의 40%를 RBC의 분자인 가용자본에 반영할 수 있도록 했다.
LAT는 내년 도입 예정인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시행을 위해 활용되는 제도다. 보험사들은 LAT에 따라 시가로 평가된 부채를 산출하고, 이 규모가 원가 평가 부채보다 클 경우 그 차액을 책임준비금으로 추가 적립하게 된다. LAT는 보험부채를 원가로 평가하는 RBC를 보완한다는 취지도 있어, 금리하락과 상승에 따라 잉여액에도 차이가 생긴다.
이번 조치는 통상적으로 금리 상승기엔 시가 평가된 보험 부채가 커지면서 잉여금이 발생하는데, 이 잉여금을 RBC 가용자본에 포함하겠다는 것. RBC비율 계산식에서 분자가 커지면서 자연스레 RBC비율도 올라간다.
다만 보험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이 LAT 잉여금의 40%를 RBC의 가용자본으로 인정해주더라도, RBC수치가 낮고 잉여액과 매도가능증권 비중이 적은 보험사들에게 IFRS17과 킥스(K-ICS·신지급여력제도) 도입 전 이번 3분기가 최대 고비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올해 4분기엔 RBC비율과 함께 킥스가 적용된 건전성 비율이 함께 발표되기 때문에 RBC비율 문제가 자연스레 해소될 전망이지만, 그 직전인 3분기엔 여전히 낮은 수준의 건전성 비율을 보이는 보험사들이 나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하반기 금리 상승 속도가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된 데다, 금융당국이 잉여금을 인정해주는 조건으로 '매도가능채권 손실'만 회계상으로 상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즉 'LAT 잉여금'과 '매도가능채권'이 적거나 없는 보험사는 정책 수혜를 입기 힘들다는 얘기다.
보험사 회계기준상 증권은 크게 단기손익인식·매도가능·만기보유증권으로 구분된다. 매도가능증권의 경우 채권 평가손익이 자본의 차감으로 이어진다. 금리에 민감해 금리가 상승할 경우 채권 평가손이 발생하고 보험사의 자본 건전성 비율도 하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예컨대 LAT 잉여액 1조 이상을 가진 DB생명의 경우, 상대적으로 RBC비율 개선폭이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LAT 잉여액 규모는 적지 않으나 매도가능증권보다 만기보유증권을 더 많이 보유하고 있어 적용 가능한 부분이 적다. 매도가능증권에서 손실이 나지 않은 MG손해보험은 LAT 잉여액을 가용자본에 보탤 수 없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이번 금융당국의 규제 완화안은 2분기부터 적용되는데, 3분기 미국 연방준비위원회의 금리상승과 한국은행의 금리상승 효과가 겹치면 규제 완화안의 효과가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금리 추가 인상을 감내할 수 있는 자본 여력을 3분기까지 갖추지 못한 보험사는 RBC 하락 고비를 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른 보험업권 관계자도 "이미 회사마다 LAT 잉여액의 40%를 매도가능채권 평가손실 한도 내에서 가용자본에 가산해보는 시뮬레이션을 다 돌려봤을 것"이라며 "회사가 가진 채권 포트폴리오와 기준금리 인상 폭에 따라 RBC비율 하락 문제가 나타날 수도 있는 상황이라, 여기에 해당하는 회사들은 자본확충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RBC비율 관리를 해오던 대형사나, LAT 잉여액의 규모가 크고 매도가능증권을 다수 가지고 있는 보험사들은 3분기도 안정적인 재무건전성 유지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이번 조치로 매도가능증권만 보유한 한화손해보험, 농협생명 등은 RBC비율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KB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보험사 1분기 RBC비율에 당국의 규제 완화안을 적용할 경우, 한화손보(122.8%→188.3%)는 당국의 권고치 기준을 다시 넘어서게 된다. 대형사인 삼성생명(246.1%→272.8%), 한화생명(160.0%→194.1%), 삼성화재(271.8%→298.3%), 현대해상(190.7%→199.9%) 등의 RBC비율도 모두 증가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들의 1분기 기준 실적이 대부분 호실적을 기록한 점을 감안하면 수익성 측면에서 건전성 문제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며 "금리인상에 대한 대비를 해 놓은 곳들은 3분기 자본건전성 지표에 타격이 덜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