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은행, 빅테크와 '플랫폼 경쟁' 진검승부 막 올랐다①
금융규제 새 판 짜기 '시동'···은행, 종합생활금융플랫폼 '도약' 급격한 규제완화로 금융사고 우려도···"보완장치 마련해야"
윤석열 정부가 40년 묵은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필두로 금융산업 육성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디지털·비대면화로 금융산업에도 대변혁이 일어나고 있다. 신기술은 물론 핀테크 등 새로운 경제주체와 가상자산과 같이 새로운 가치를 보유한 자산들이 대거 등장했다. 기존의 낡은 규제로는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기 힘든 상황이 된 것이다. 변화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게 현 정부가 금융규제 개선을 추진하는 배경이다. 규제 개선 기조에 맞춰 은행, 보험, 카드 등 전통 금융회사와 빅테크, 핀테크 등 새로운 금융플레이어들은 희망사항을 정부에 전달하는 등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규제에 가로막혔던 숙원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 길이 열리자 금융권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은행의 경우 통신, 부동산, IT 등 산업자본을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소유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가상자산, 신탁·투자자문업 등 영업이 제한됐던 새로운 산업으로의 진출도 수월해진다. 폭넓은 데이터를 활용해 고객 맞춤형 금융·비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디지털 유니버설 뱅크'로의 도약이 가능해진 셈이다. 보험사 역시 단순 보험상품 제공업자에서 보다 폭넓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종합 건강관리(헬스케어) 금융플랫폼으로 진화할 수 있게 된다. 카드사는 지급결제 인프라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각종 결제·금융상품·자금관리 서비스를 아우르는 생활밀착 금융플랫폼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될 전망이다. 가상자산업은 제도권으로의 편입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 소비자 편의성을 높이기 위해 빅테크·핀테크 등 새로운 금융플레이어도 업무영토를 대폭 넓힌다. 물론, 급격한 규제 개선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분명하다. 규제 완화가 금융사고를 불러올 것이란 시각과 사고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지는 부작용도 불가피하다. 규제 개선에 대한 여러 시각이 상존하는 가운데, 서울파이낸스는 창간 20주년을 맞아 윤 정부와 금융업권의 핵심 현안으로 떠오른 규제 개선방향과 전망 등을 4회에 걸쳐 진단한다./편집자주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급변하는 금융환경 속에서 은행의 경쟁력을 결정지을 '플랫폼'의 업무범위가 대폭 확대된다. 전통 금융회사들 가운데서도 고객의 예금을 직접 관리하는 은행은 가장 엄격한 규제가 적용돼 플랫폼을 통한 신사업을 영위하기 어려웠다.
특히 네이버, 카카오 등 IT 기반 빅테크·핀테크들은 플랫폼 경쟁력을 무기로 금융시장에 진출하자 은행들 사이에선 플랫폼을 키울 수 있도록 규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신사업을 하려면 금융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은행과 달리 빅테크·핀테크들은 금융업을 진출하는데, 사실상 무혈입성이 가능해서다.
소비자 편익을 높이고 금융업을 한단계 발전시키기 위해 빅테크·핀테크에 좀 더 유연한 규제를 적용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 또한 분명히 있다. 그러나 플랫폼을 등에 업은 이들 신규 사업자의 영향력이 확대되자 은행들의 위기감도 커졌다. 은행이 규제에 가로막혀 있는 사이 빅테크·핀테크 업체들이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어서다.
대표적인 예가 최근 대출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쿠팡 파이낸셜'이다. 쿠팡의 손자회사인 쿠팡파이낸셜은 최근 금융당국에 여신전문금융업 등록을 마쳤다. 쿠팡에 입점한 업체를 대상으로 대출을 공급하는 할부금융업을 영위한다는 계획이다. 수많은 입점 업체들에 대출을 제공해 외형을 크게 키운다는 복안인데, 적정 수준의 금리만 제공한다면 쿠팡과 쿠팡 입점 업체들 모두 '윈윈(Win-Win)' 할 수 있는 전략이다.
반면, 기업대출의 한 축인 개인사업자를 쿠팡에 뺏기게 된 은행 입장에선 불만이 클 수밖에 없다. 할부금융(캐피털)업은 허가제가 아닌 등록제로, 시장 진입이 까다롭지 않다. 반면 은행이 쿠팡과 같은 이커머스 사업을 영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은행은 '15% 이상의 산업지분을 보유할 수 없다'는 금산분리 규제를 받는 데다 은행업감독규정에 따라 15개 금융(관련)업종만 자회사로 둘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신사업에 진출하려면 대주주적격성 평가 등 금융당국의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야 한다.
전통 금융업이 아닌 서비스를 영위할 수는 있으나 금융당국으로부터 혁신금융서비스(금융규제샌드박스)로 지정받아야 하고 그 범위 역시 제한적이다. 특히, 금융규제샌드박스의 경우 2년마다 허가를 다시 받아야 하기 때문에 사업 영속성 측면에서 리스크가 클 수밖에 없다.
KB국민은행이 제공하는 알뜰폰 서비스 '리브모바일(Liiv M)'과 신한은행의 음식배달 서비스 '땡겨요' 등이 대표적인 예다. 비은행 영역을 키우기 위해선 해당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어야 하지만 각종 제약으로 한계에 부딪친 상황이다.
현재 은행들이 가장 원하는 규제개선 사항은 '금산분리 완화'다. 은행이 자유롭게 비금융 영역에 진출해 '디지털 유니버설 뱅크'로 도약하려면 '금산분리 규제' 완화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앞서 은행권은 지난 6~7월 은행연협회를 통해 금융당국에 은행 IT·플랫폼 관련 서비스와 신기술 투자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금산분리를 완화하고, 이를 통해 업무범위와 자회사 투자제한을 개선해달라 요청하기도 했다.
금산분리 규제가 완화되면 은행은 부동산, 배달중개 등 생활서비스 비즈니스를 자유롭게 영위하거나 관련 업체를 직접 인수해 외형을 키울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기술 자회사를 통해 블록체인, 디지털자산 등 핵심 신기술을 자체 개발하게 되면 금융회사들 뿐만 아니라 IT기업들과도 기술 경쟁력을 겨뤄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세부적으로는 영상·문서 관련 디지털 인식기술 업체를 직접 인수해 본인인증, 전자문서중계 등의 서비스를 더 쉽고 빠르게 제공할 수도 있게 된다. 각종 비금융 데이터와 인프라를 보유하게 되면 기업고객을 대상으로 물품구매·계약·발주 등 공급망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송금·대출 등 금융서비스까지 원스톱으로 공급할 수 있는 길도 열린다.
금산분리 규제 외 독자적인 종합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슈퍼 애플리케이션(앱)'이 등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와 관련해 은행권은 △부수업무 규제 완화 △디지털 유니버설 뱅크 관련 제도 개선 △그룹 계열사 간 고객정보 공유 허용 △가상자산, 조각투자 등 디지털 신산업 진출 규율체계 정립 등을 당국에 요구한 상태다.
당국도 규제 개선에 대한 의지가 어느 때보다 높다. 금융규제 개선 논의를 위한 금융규제혁신회의를 지난 7월 출범했으며 지난달까지 두차례 회의를 개최했다. 이에 앞서 올해 6~7월엔 전 금융권을 상대로 업권별 규제개선 요구사항을 파악했고 36개 세부 과제를 우선적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당국은 앞으로 매월 금융규제혁신회의를 개최하는 등 규제 개선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금융규제 개선에 대한 요구가 커지는 가운데, 일각에선 급격한 규제완화가 금융사고 등 부작용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앞서 지난 2019년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라임펀드 등 대규모 사모펀드 부실사태 당시 일반 개인투자자들의 피해가 컸던 원인으로 금융규제 완화가 지목되기도 했다.
은행의 비금융 자회사 설립에 따른 계열사 리스크 전이 문제도 규제 개선 논의 과정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이슈다. 은행들이 수익성 높은 비금융 서비스 키우기에만 주력하다가 금융소외계층에 대한 지원을 소홀히 할 수도 있어서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금융산업이 경쟁력 있는 산업으로 전환하려면 디지털 자회사 또는 디지털 플랫폼 기업과의 협업 측면에서 지분투자나 자회사 설립 등이 필요하기 때문에 금융업종의 제조업에 대한 투자제한 규정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금융산업이 지나치게 사업다각화나 문어발식 확장을 하면서 리스크가 계열사로 전이되는, 시스템 리스크에 노출되는 측면은 우려되는 사항"이라고 꼬집었다.
서 교수는 "한번에 규제를 완화할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규제완화 효과 등을 검증하면서 3년에 걸쳐 로드맵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며 "1단계로 은행업의 디지털 플랫폼 자회사 설립에 대한 규제완화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주고, 2단계로 2금융권의 디지털 전환 전략을 제시하고, 3단계로 소비자보호와 관련한 대응 방안을 같이 마련하는 등 단계별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