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경제 걱정 안 되나
요즘 국내 언론은 정치적인 이슈들로 뒤덮고 있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그 아래에 위험하게 출렁이는 경제상황에 몹시 불안하다. 정치와 경제가 명확히 분리되는 것도 아니고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지면 당국이 어떤 경제정책이나 전망을 내놓아도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외환위기 가능성에 대해서도 기획재정부는 외환보유고가 충분해서 걱정할 것 없다고 밝혔지만 시장개입의 결과인지 확인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 외환보유고가 조금만 줄어도 신경을 곤두세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0.5%p 인상했지만 여전히 미국과의 금리역전이 지속되며 이런 기조가 얼마나 더 이어질지를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다.
미국의 금리인상은 연말까지 4.5%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한국은 지난해 8월 선제적인 금리인상을 단행한 덕분에 미국에 비하면 다소 느린 걸음으로 뒤쫓아 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달 전부터 발생한 한미간 금리역전 상태가 6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외화유출이 대량 발생하는 사태가 안 일어난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그러나 금리문제보다 더 큰 걱정은 6개월째 이어지고 있는 무역적자다. 가장 큰 무역상대국이자 최대 무역흑자국이었던 중국과의 관계는 미·중 갈등 속에 섣부른 줄서기를 하며 파국을 향하려 하고 그렇다고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해서 기를 쓴 미국과의 교역상황도 악화되기만 한다.
투자자는 현재의 가치보다 미래가치를 더 중요하게 본다. 따라서 성장성을 확신할 수 있다면 해외투자자들은 미국과의 금리가 소폭의 역전이 나타나더라도 국내 시장에 계속 머무를 가능성이 높지만 지금처럼 무역적자가 계속되는 한국시장에 대한 선호가 유지될 수 있을지는 확신하기 어렵다.
게다가 최근 들어 정부의 대북 강경발언들이 여기저기서 툭툭 터져 나오고 한반도 문제에서 한국이 패싱 당하는 사례까지 나타나면서 안보 리스크가 커지고 그로 인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되살아나려 한다. 일본을 앞지르던 대외신인도는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고 지난해까지 몇 년간 높아졌던 한국의 국가위상이 빠르게 추락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간신히 잡았던 한반도 문제의 키를 스스로 놓아버린 대가다.
외환 위기나 한·미 금리역전에 따른 금융 불안, 금리인상에 제동을 거는 높은 가계부채, 근래 경험한적 없는 높은 물가상승 등 여러 불안요소가 지뢰밭처럼 퍼져있다. 정부 역시 이런 위험성을 파악하고 있을 테니 그런 사태를 방치하지는 않으리라 본다.
다만 세계 1위의 가계부채 문제를 외면하고 마냥 미국을 쫓아 금리인상을 이어갈 수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가계부채 문제는 숱한 서민가계 특히 젊은 층의 생활기반을 파괴할 위험도가 높기도 하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금융시스템의 불안을 초래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에 더 주목하게 될 것이다.
금융안정과 물가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는 역부족일 것이다. 결국 선택의 문제에 직면할 정부가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는 이번 정부의 성격을 보면 분명히 예측 가능하다.
특히 현재의 높은 물가상승률에 한 국가의 역량만으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도 있는 만큼 물가를 포기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중심 정책을 고수하는 정부가 임금인상 억제부터 시도하고 있는 터라 국내 경기의 추락은 명약관화하다.
그럼에도 대기업 재벌들에게 혜택을 몰아주는 세금정책을 펴려 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지원하는 각종 예산은 대폭 삭감하려는 정부 아래에서 과연 사회적 불안감은 얼마나 커질 것인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선진국 문턱을 간신히 넘자마자 추락의 위기에 직면한 한국 경제의 미래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뒷전인 채 정치적 갈등만 증폭되는 양상이 답답하다.
낡은 이론의 틀에 스스로를 가둔 채 급변하는 국제상황과 국내적 여건, 국민적 기대에 제대로 된 판단조차 내리지 못하는 경제 관료들의 굳어버린 사고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에 더해 정부 조직들은 기관 이기주의와 개인 보신주의가 팽배해가고 있다.
관료조직이 국가적 이익보다는 충성경쟁을 통해 개인적 권익보호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근본 원인들은 언론을 통해 제대로 조명되지 않고 있다. 백성들이 정의를 갈구할 때 표면적으로는 '의(義)'를 내세우던 사대부들은 사리사욕을 위해 앞다퉈 일제에 나라를 팔아먹었던 역사의 반복만큼은 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