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퍼펙트스톰' 경고음 속 가려진 진짜 위기
글로벌 주요 전망 기관들이 세계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것이란 우려 섞인 전망을 잇따라 내놓고, 언론사들은 일제히 '퍼펙트 스톰'의 위기가 도래하고 있다는 비관 섞인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퍼펙트 스톰이란 개별적으로 보면 크지 않았던 태풍들이 다른 자연 현상과 맞물려 엄청난 파괴력을 내는 현상을 말한다. 통상 경제계에서는 퍼펙트 스톰을 심각한 세계 경제 위기 등을 빗대어 표현할 때 사용한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충격 이후 전 세계는 글로벌 공급망 차질과 국제유가 급등으로 글로벌 인플레이션 충격에 휩싸였고, 세계 중앙은행들은 물가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긴축의 고삐를 더욱 당기고 있다.
그러나 세계는 단순히 경제의 논리로만 움직이지 않았다. 유럽에서는 지정학적 리스크가 폭발해 전쟁으로 발발했고, 미국은 코로나 충격 이후 급변하는 사회 속 물가 충격이 장기화하고 있다. 또한 미국과 중국 간 기술 패권을 둘러싼 경쟁 속에 우리나라는 아무런 실익을 챙기지 못한 채 양자택일을 강요받고 있다.
이렇듯 정치·경제·사회·역사가 어지럽게 맞물리며 세계 경제 상황은 더욱 풀기 어려운 실타래처럼 꼬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달 세계경제전망보고서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을 다시 한 번 낮춰잡았다. IMF는 "최악은 아직 오지 않았다"며 높은 물가와 금리, 양적긴축을 둘러싼 불확실성, 우크라이나 전쟁 등이 세계 경제를 침체에 빠트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우리나라 역시 과거 외환위기 이후 처음 6% 물가상승률을 경험했고,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돌파했다. 여기에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무역수지는 6개월째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이 역시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다. 지난 8월 역대 최대적자 기록은 덤이다. 이에 성장률은 잠재성장률도 하회할 것이란 관측까지 나온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현 경기 상황을 매우 엄중히 바라보고 있고, 위기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의 언행은 간혹 낙관적으로 비춰질 때도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위기가 재현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물가가 곧 정점을 찍고 내려올 것"이라는 언급을 내놓는다.
하지만 국민들이 체감하고 있는 물가 상황은 '엄중하다'는 말로 모두 담아내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럽기만 하다. 10월 물가 정점 전망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현재의 어려운 경기를 타개하기 위해 함께 힘을 받쳐야 할 국회에서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새 정부 들어 이달 처음 열린 국정감사는 반환점을 돌았지만, 민생 이슈는 사라졌고 연일 파행만 거듭하고 있다. 정작 국감 내내 쏟아진 '막말'들로 퍼펙트 스톰의 경제 위기는 잊혀진 지 오래다.
경기적 요인에 따른 충격에 더해 금융불균형 누증, 천정부지 치솟은 집값, 세계 최저 출산율 등 우리 사회의 해묵은 사회적·구조적 요인들 역시 우리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위기를 위기로 바라보지 않는 데서 진짜 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