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RP 매입 요청 '0'···정책효과? 이미지 관리?

2022-11-05     김호성 기자
여의도

[서울파이낸스 김호성 기자] 한국은행이 단기 자금시장 경색에 대응해 주요 증권사를 대상으로 6조원 규모 환매조건부채권(RP)을 매입하기로 지난달 27일 결정한 이후 일주일이 넘는 기간 동안 증권사의 매입 요청 건수는 ‘0건’으로 집계됐다. 

5일 투자금융(IB) 업계에 따르면 한은의 RP 매입 방침 발표 이후 이달 4일까지 매입을 요청한 증권사는 한곳도 없었다. 시장에서 하루짜리 RP 거래가 원활하게 이뤄지면서 유동성 경색이 시장 전체로 퍼진 상황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또 한편으로는 증권사들이 RP 매입을 실제로 요청할 경우 자금 사정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점을 경계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최근 흥국생명과 DB생명이 자금 건전성에 대한 이미지 손상 우려에도 불구하고 신종자본증권에 대한 콜옵션(조기상환권) 행사를 거부하거나 연기한 것과 대조적으로 증권사들은 낙인효과를 경계하는 모습이다.

결과적으로 1일물 RP금리는 최근 사흘간 2.91%로 내려가며 기준금리 3%를 하회했다. 한은 입장에서는 돈 한 푼 안 쓰고 시장 안정 효과를 달성하고 있는 셈이다.

증권사의 1일물 RP를 받아주고 있는 곳은 은행권이다. 한은은 9월 RP를 28조원 매도해 자금을 흡수했으나 10월엔 이 규모를 18조원으로 줄이며 자금 흡수 규모를 축소했다. 이에 은행권 자금은 비교적 풍부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은행권은 신용경색 우려 등으로 증권사에 자금을 공급하길 주저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이 RP매입 등 직접적으로 증권사에 자금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하자 은행권이 증권사에 적극적으로 자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이전까지 신용경색을 우려해 증권사에 자금 공급을 꺼린 은행이 한은 조치로 RP 매입에 나설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앞서 한은은 지난달 27일 금융통화위원회 정기회의에서 메리츠증권, 미래에셋증권 등 6개 증권사와 한국증권금융 등으로부터 총 6조원 규모의 14일물 RP를 매입하는 방안을 의결했다. 레고랜드발(發) 단기 자금시장 경색을 풀기 위한 방안으로, 이들로부터 RP를 사들여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막상 한은에 RP 매입을 요청한 증권사는 없었다. 한국증권금융 역시 마찬가지다.

일각에선 증권사들이 ‘낙인효과’를 우려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RP 매입을 요청할 경우 한은에 손을 벌릴 정도로 사정이 좋지 않다는 신호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은이 수요예측을 잘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한은의 RP 매입 대상은 자금 사정이 비교적 나은 대형 증권사 위주이기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한국증권금융이 중소형 증권사들의 은행 역할을 하고 있고, 증권금융 역시 RP 매입을 요청하지 않았다”며 “자금 사정이 악화할 수 있는 연말을 앞둔 만큼 상황을 계속해서 주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금융위원회는 ‘흥국생명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행사 거부’로 불거진 보험사 유동성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RP 매입 대상에 보험사를 추가하는 방안을 한은에 건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한은은 “금융통화위원회 의결 사항인데다 실무 단계에서도 검토한 바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