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이 배당' 없앤다는데···금융지주사 '먼나라' 얘기?
금융당국, '선배당 후투자' 자본시장법 개정 금융지주사, 당국-주주 눈치 희생양 '우려' 고질적 문제 '배당락' 불확실성은 감소할듯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앞으로 투자자들이 상장사의 배당금액을 보고 투자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배당제도가 주주친화적으로 개선되는 가운데, 금융지주사의 경우 정부의 입김 탓에 주주친화적 배당은 요원할 것으로 보인다.
배당액을 결정할 때 금융당국의 눈치를 봐야하는 금융지주사 입장에선 배당성향을 마냥 늘릴 수 없을 뿐더러 눈덩이처럼 불어난 가계대출 부실을 대응하기 위한 대손준비금 등과 같은 금융당국의 주문이 언제든 수면 위로 부상할 수 있어서다.
금융위원회는 이르면 내년부터 배당액을 먼저 확인한 후 투자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 계획을 31일 밝혔다. 배당금을 얼마 받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투자를 해야 하고, 몇 개월 뒤 이뤄지는 배당결정을 그대로 수용해야 하는 현 제도를 보다 주주친화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다.
현행 결산배당 제도는 상장 기업들이 매년 12월 말 배당받을 주주를 확정(배당기준일)한 후 다음해 3월 주주총회에서 배당금을 결정하는 방식이 적용된다. 마찬가지로 분기배당도 이사회에서 배당금을 결정하기 전 배당 받을 주주가 먼저 확정되는 방식이어서 '깜깜이 투자'란 지적이 잇따랐다.
이에 금융당국은 배당기준일을 배당액이 공개되는 주총과 이사회 결의 날짜 이후로 미루기로 했다. 배당에 대한 불확실성이 줄어드는 만큼 배당투자가 활성화되고, 외국인 투자자 유입이 늘어날 것이란 설명이다.
배당액을 미리 확인할 수 있는 만큼 투자환경이 개선될 것으로 보이지만 금융지주사들은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당국의 '관치압박'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주주들 기대에 못미치는 배당 수준을 미리 공개하는 데 대한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배당 규모는 각 기업 이사회에서 결정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금융회사, 특히 금융지주사는 당국의 지도·조율에 맞춰 배당을 결정한다. 발생 가능한 금융리스크를 사전 지도를 통해 방지하겠다는 게 당국의 기조다. 금융지주사들은 보수적 시각으로 경기둔화 우려에 준비해야 한다는 당국 요구에 따라 배당성향을 마냥 늘릴 수 없다.
특히, 최근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특별대손준비금 적립을 요구할 수 있는 제도 도입을 공식화하면서 금융지주사들의 배당 결정에 개입할 여지도 더 커졌다. 대손준비금을 쌓을수록 그만큼 배당 여력은 줄어들게 된다.
금리 상승에 힘입어 역대급 실적을 앞두고 있는 금융지주사들은 배당성향을 30%까지 지속적으로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바 있다. KB·신한·하나·우리금융 등 국내 4대 금융지주는 지난 2020년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해달란 당국 요청에 따라 배당성향을 20%로 낮춘 뒤 현재 25~26%까지 올린 상태다. 지난해 기준 배당성향은 △KB금융 26.0% △하나금융 25.6% △우리금융 25.3% △신한지주 25.2% 등이다.
금융지주사들이 원하는 수준의 고배당이 가능한 상황이라면 배당수준이 시장에 먼저 공개됐을 때 투자자들의 유입도 기대해볼 수 있다. 현재 1배 미만에 머무르고 있는 은행주 주가순자산비율(PBR)도 상승할 수 있다.
그러나 건전성 확충을 강조하고 있는 당국 기조대로라면 앞으로도 금융지주사들의 배당 수준은 투자자 기대에 못미칠 가능성이 높다. 배당투자를 활성화하고자 추진하는 이번 자본시장법 제도 개선이 금융지주사들에는 오히려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상장 금융회사라면 주주들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당국 기조가 강경하더라도 주주들 보고 배당을 좀 더 높일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면서 "앞으로 배당액을 먼저 결정하고 이후에 주주가 결정된다면, 배당을 결정하는 시점에 당국의 눈치를 더 보는 상황이 생길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또다른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배당액을 먼저 공개하게 되면 금융지주사들의 고질적 문제였던 '배당락' 문제가 해소되는 긍정적인 면은 있을 것"이라면서도 "당국 기조를 따르려다가 기대에 못미치는 배당수준이 시장에 선공개된다면 오히려 투자자들이 빠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