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금융 이석준 이어 우리금융도 '모피아' 임종룡···관치 논란(종합)

손태승 회장 퇴진 압박하고 '관료 출신' 낙점 윤 정부 '지배구조 선진화' 기조와 정면 배치 "민영화·펀드사고 단초 제공 당사자" 거부감 '검찰 vs 기재부' 에리트 집단 갈등 불씨되나

2023-02-04     이진희 기자
임종룡

[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우리금융지주 차기 회장에 임종룡(63) 전 금융위원장이 내정됐다. 금융위원장 시절 우리금융 민영화를 추진한 뒤 5년여 만에 본인이 회장 자리을 맡게 된 것이다.

임 내정자는 이른바 '모피아'로 불리는 옛 재정경제원(현 기획재정부) 관료 출신. 우리금융이 외부 인사인 관료 출신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한 건 2007~2008년 박병원(72, 행시 17회) 전 회장 이후 15년 만이다.

올해 초 NH농협금융 회장에 이석준(63, 행시 26회) 전 국무조정실장이 선임된데 이어 임 전 위원장까지 우리금융 회장으로 내정되면서 금융권에 관치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우리금융 임추위는 3일 오후 회의를 개최하고 임 전 위원장을 차기 대표이사 회장 후보자로 추천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27일 임 전 위원장을 비롯해 이원덕(61) 우리은행장, 신현석(62) 우리아메리카은행 법인장, 이동연(61) 전 우리FIS 사장을 차기 회장 2차 후보(숏리스트)로 선정한 뒤 일주일 만이다.

숏리스트에 오른 4명 중 유일한 외부 출신인 임 전 위원장은 민관을 두루 거친 '금융전문가'로 평가된다. 1959년생으로,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행시 24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이후 옛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과장, 경제정책국장, 기획재정부 제1차관, 국무총리실장 등을 역임했다.

지난 2013년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을 거쳐 박근혜 정부에서 금융위원장을 지냈다. 금융위원장으로 발탁돼 금융정책을 총괄 지휘했을 뿐 아니라 농협금융 회장까지 지낸 경험으로, 업계에선 민관에서의 전문성을 모두 지녔다는 평가가 나온다.

거센 관치 논란이 예상됨에도 임추위가 임 전 위원장을 선택한 것은 이런 민관을 아우르는 이력과 그의 능력이 크게 작용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내부통제 실패로 인한 횡령 사고, 파생결합펀드(DLF)·라임펀드 사태 등 각종 금융사고로 잡음이 많은 조직을 과감히 혁신하기 위해선 객관적인 시각을 가진 외부 인물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고 알려져 있다.

임추위 관계자는 임 전 위원장을 최종 후보로 선정한 배경에 대해 "우리나라 금융정책을 총괄하는 금융위원장을 역임하고 국내 5대 금융그룹 중 하나인 농협금융의 회장직도 2년간 수행하는 등 민관을 두루 거친 금융전문가로서 우리금융그룹을 한 단계 도약시킬 수 있는 다양한 역량을 갖춘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대내외 금융환경이 불안정한 시기에 금융시장뿐 아니라 거시경제 및 경제정책 전반에 걸쳐 폭넓은 안목을 갖춘 임 전 위원장이 안정적인 경영 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우리은행 내 상업·한일은행 출신 간 내부 파벌 갈등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이 힘을 보탰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는 그야말로 결과론적인 해석일뿐 내막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과 의구심이 제기된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라임 펀드 사태로 중징계를 받은 손태승 현 회장을 향해 연임 시도를 하지 말 것을 압박했고, 실제로 손 회장은 후보로 나서지 않았다. 손 회장이 당국의 압박에 연임을 포기하면서 차기 회장 경쟁은 이원덕 우리은행장과 임종룡 전 위원장의 내외부 출신 2강 구도로 압축됐다.

당시 금융권 안팎에서는 고개를 갸웃했다. 금융당국이 손 회장의 연임 의지를 꺾으면서까지 '모피아' 인사를 강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서다. 임 내정자는 윤석열 정부 출범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로 거론됐지만, 본인이 고사해 입각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이석준 NH농협금융 회장처럼 대선 캠프에 참여해 윤 대통령 당선에 기여하지도 않았다.

이같은 이유로 인해, 이 행장이 우리금융 차기 회장에 낙점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듯했다.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그랬다. 동시에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게 제기됐다. 부총리 자리를 거절한 거물급 인사가 굳이 말썽 많을 우리금융 회장 후보로 나선 것은, 결코 '들러리'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서다. 

당시 금융권 안팎에서는 '임 전 위원장을 누가 미는지 알 수 없다'는 말이 돌았다. 앞서 지적했듯이 대통령실이 임 전 위원장을 낙점했다고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측면이 있기 때문에서다. 결국 임 내정자가 우리금융 회장에 출사표를 던진 배경에는 '모피아의 힘'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한덕수 국무총리, 김대기 대통령 비서실장, 최상목 경제수석 등 현 정부에 두루 포진해 있는 기재부 출신 인사들의 지원을 받고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가운데, 임 내정자 앞에는 마지막 관문인 다음 달 24일 주주총회까지 관치 논란이 그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조직 안정과 함께 이런 논란을 잠재우는 것이 첫 번째 과제로 부각돼 있다.

현재 우리금융 내부에선 노조를 중심으로 그의 취임을 결사반대하고 있다. 우리금융 노조 측은 지난달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은행장 인사권을 정부가 좌지우지하던 시절을 비판하던 인물의 후안무치"라며 "각고의 노력으로 23년 만에 완전 민영화를 이뤘는데 '모피아 올드보이'의 보금자리로 추락시킬 수 없다"고 규탄했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지난달 31일 차기 회장 후보군에 임 전 위원장이 포함된 것과 관련해 "사모펀드 규제 완화를 주도했던 인물이, 내부 통제를 강화해야 할 우리금융 차기 회장에 도전하는 것은 피해자들을 우롱하는 행위"라는 입장문을 낸 바 있다.

임 내정자가 특유의 친화력을 앞세워 우리금융 내부의 반발을 잠재우고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함으로써 우리금융의 쇄신을 이끌어내더라도 현 정부나 금융당국으로서는 짐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다.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가 강조하는 금융사 지배구조 선진화 기조와는 부합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달 26일 우리금융 회장 선임 절차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을 피력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당시 이 원장은 "적어도 주주가 객관적 기준을 물었을 때 사후적으로 검증 가능한 정도의 기준이나 절차를 진행하는 것이 최선"이라며 "선진 금융기관을 보유한 나라를 보면 이사회에서 경우에 따라 회장 결정을 유보할 수도 있고,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으로 후보를 형성한다”고 지적했다.

이에대해 사실상 임종룡 선임을 반대한 것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뿐만아니다. 그의 이력도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우리금융지주 민영화를 추진하고, 라임 펀드 등 금융사고의 단초를 제공한 당사자가 임 전 위원장이기 때문이다. 임 내정자는 금융위원장 시절인 2015년 3월 사모펀드의 설립과 운용, 판매를 선진국 수준으로 바꾸겠다면서 사모펀드 규제를 대대적으로 풀었다.

이같은 점들을 종합할 때, 임 내정자의 선임으로 정부의 '금융회사 지배구조 선진화' 정책은 신뢰면에서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관치' 꼬리표를 단 임 내정자와 우리금융이 금융당국과 어떻게 관계를 개선해나갈지 부터가 난제다. 윤석열 정부로서는 명분과 실익 모두를 잃거나, 적어도 '금융권 인사 퇴행'이라는 비판을 벗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더나아가, 이번 인사가 현 정부 내의 핵심 엘리트 집단인 검찰 출신과 기재부 출신 간 갈등과 대립을 촉발하는 불씨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시각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