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부실시공 논란의 건설업계, '우중타설' 규제 마련 시급
[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일 강수량 64.8mm, 해당 지역에서 한 달 중 가장 많은 비가 내린 9월20일. 오전부터 내리는 비에 바삐 길을 걷던 A씨는 길 건너 아파트 공사 현장을 보고 눈살을 찌뿌렸다. 적지 않은 양의 비가 오는데 건물 5층 이상 높이에서 노동자들이 타설을 진행하고 있었고 그중 우산을 쓰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도 보였다. A씨는 건설현장 안전 불감증을 두눈으로 확인하면서 최근 뉴스에서 봤던 부실시공, 건물 붕괴 사고를 떠올렸다.
전국에서 콘크리트 품질 저하로 인한 건물 붕괴 사고가 잇따라 발생한 가운데 건설업계에서 관행적으로 진행해 온 '우중(雨中) 타설'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명확한 기준이 없어 건설사들의 자체 규정에 따라 만연하게 우중타설이 진행되는 만큼 관련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부실시공 논란으로 고초를 겪는 LH의 전국 103개 건설현장에서 올해 큰비(20㎜이상/일)가 내린 날 총 38건의 콘크리트 타설을 진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LH의 '강우 시의 공사관리 요령 지침'에 따르면 콘크리트 타설시 시간당 강우량 5㎜ 이상, 일 20㎜ 이상의 큰 비일 경우 작업을 중단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LH 건설현장에서는 일 강우량 별로 △20㎜ 이상 19건 △50㎜ 이상 8건 △70㎜ 이상 8건 △100㎜ 이상 3건으로 최대 일일 강우량이 153㎜에도 타설이 진행됐다.
민간아파트 건설현장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 앞서 집중호우가 이어지던 지난 7월 GS건설은 서울 동대문구 '휘경자이 디센시아' 지하 주차장 부분의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해 논란이 된 바 있다. 또 같은달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오송파라곤센트럴시티 3차 공사 현장에 우중 콘크리트 타설이 이뤄지면서 입주 예정자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지난 8월에는 대우건설의 '왕길역로열파크시티 푸르지오' 시공 현장에서 우중 콘크리트 타설 작업이 진행됐다.
문제는 법적 기준이나 규정이 없기 때문에 현장에선 시공사 내부 규정이나 자체적 판단에 따라 작업을 진행하고 있단 점이다. 현재 콘크리트공사 표준시방서에는 '강우, 강설 등이 콘크리트의 품질에 유해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필요한 조치를 정해 책임기술자의 검토 및 확인을 받아야 한다'는 규정만 있다. 업계에서는 검토 조치가 필요한 강수량 기준이나 책임기술자 등 관련 규정이 모호한 만큼 자의적 판단에 따라 우중타설이 만연한 게 현실이라고 지적한다.
앞서 A씨가 목격한 우중타설 현장의 시공사인 대형건설사의 경우 자체 기준(강수량 시간당 5mm 이상 시 타설 중단)에 따라 작업을 중단했다며 우중타설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 건설사 관계자는 "당시 작업을 시작한 9시30분에는 비가 오지 않았고 비가 오자 11시께 타설을 중단했다. 우중타설로 보는 것은 과도한 해석"이라면서 "감리 입회하에 진행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리해서 그렇게 진행할 순 없다, 이후에 콘크리트 강도 확인도 다 마친 상태"라고 해명했다.
이처럼 건설업계 만연한 우중타설이 부실시공 논란과 맞물려 우려를 낳고 있는 만큼 국토교통부는 최근 '콘크리트공사 표준시방서(일반콘크리트)' 개정을 검토하고 나섰다. 이와 관련, 업계에서는 제도적 실효성을 높이고 현장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선 명확한 기준과 의무 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우중타설 시 지붕이 있지 않는 한 콘크리트에 물이 섞일 수밖에 없고 강도나 품질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면서 "강수량이나 배합 비율 등 명확한 법적 기준도 없고 표준시방서도 사실상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현장의 판단으로 공기 단축을 위해 무리한 우중타설을 진행하는데 잘못된 관행이고 원칙적으로는 금지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수영 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콘크리트 양생 시 물이 일부 필요해서 소량의 비가 올 때는 타설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비가 많이 오면 강도가 떨어지는 문제가 있다"면서 "뿐 아니라 배합 비율 상 물이 많이 들어가면 표면 분리로 시멘트가 씻겨 내려가고 골재가 녹는 등 시설물 안전상 문제가 생길 수 있고 품질 문제와 함께 건설현장 근로자 안전 문제도 있는 만큼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