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월세 내리느니 공실로 두겠다는 건물주들

"글로벌 대기업도 철수" 가로수길 공실률 36.5%···39㎡ 보증금 1억에 월세 2500만 임대료 낮추지 않는 이유는 건물 가치 하락·상가임대차보호법·낮은 세금 등 때문 늘어난 상업 용지와 수요 분산, 자영업자의 대출 부담으로 상권 회복 쉽지 않아

2023-11-13     박소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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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박소다 기자]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서울 명동과 가로수길 등 주요 상권에 관광객들이 다시 돌아오면서 상가 공실들도 메워지고 있다. 서울 명동과 가로수길 등은 막대한 임대료에도 대기업 프랜차이즈들이 마케팅 효과를 기대하며 공을 들이던 곳으로 유명하다. 다만, 최근 높아진 임대료 때문에 철수하는 가게들이 늘어나며 임차인과 임대인 모두 쉽지 않은 시기를 겪고 있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상가시장이 펜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기 위해선 임대인들이 적정한 수준으로 월세를 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 11일 기자가 방문한 서울 가로수길은 서울 6대 상권 중 하나로 한때 고급 패션 브랜드와 레스토랑·까페가 많았던 곳이다. 그러나 지금은 대로 초입 건물부터 공실 등 가로수 길 건물 대부분에 '임대 문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늘어난 공실에 구경거리도 없어져 주말에도 이곳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점심시간임에도 가로수길의 대부분 음식점에는 대기 줄이 없었고, 이후 방문한 '스타벅스'마저도 6~7분에 한 팀이 들어올 정도로 한산했다.

실제로 부동산서비스업체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가로수길 공실률은 36.5%로 명동, 강남, 홍대, 한남·이태원, 청담보다 2~3배가량 높다. 코로나19로 관광객이 없었던 지난해에 대비해도 공실이 27%나 증가했다. 

이러한 공실률을 발생시킨 주요 원인은 높은 임대료 때문이다. 인근 부동산에서 가격을 문의한 결과 가로수길 메인 도로의 39.6㎡상가 매물은 현재 보증금 1억에 월세 2500만원(1㎡ 당 63만원 수준)에 나와 있었다. 대기업 브랜드가 들어갈만한 1·2층 총 400㎡면적의 공실은 보증금 15억원에 월세 1억원(1㎡ 당 25만원)이었다. 이는 올해 서울시가 발표한 '2022 상가임대료 실태조사'에서 평균 통상임대료가 가장 높은 것으로 조사된 강남구 '강남대로' 1층 상가의 ㎡당 통상임대료 14만원에 비해서도 월등히 높은 모습이다. 이에 소상공인은 물론, ZARA 등 글로벌 대기업 브랜드도 계약이 종료되자마자 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실 상황이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건물주들은 건물 가치 하락을 우려해 임대료를 낮추지 않고 있다. 

가로수길 상가의 중개업무를 담당하는 공인중개사 A씨는 "가로수길의 월세 문의는 요즘 거의 없는 게 맞다. 간혹 오는 손님을 잡기 위해 건물주에게 월세를 좀만 깎아줄 수 없느냐고 물어는 보는데 성사된 건은 없었다"며 "단기 임대인 팝업스토어(짧은 기간 운영되는 오프라인 소매점)만 계약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건물주들이 월세를 내리지 않는 원인으로 '건물 가치 하락'과 '상가임대차보호법'을 들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은 한번 임차인을 들이면 10년간 계약 갱신 요구(연 5% 이상 월세 상향 제한)를 받아줘야 한다는 내용이다. 낮은 월세를 받으면 그 수준을 향후 10년간 유지해 줘야 하기 때문에 건물주 입장에선 차라리 공실로 두더라도 추후 높은 금액에 임대하는 게 이득인 셈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를 보면 현재 가로수길 빌딩의 가치는 2010년대 대비 200% 넘게 상승했다. 가로수길 메인 도로의 2017년 공시지가는 ㎡당 1882만원에서 2023년 4284만원까지 올랐다. 올해 거래된 가로수길 인근 800㎡대 빌딩의 매매 거래금액은 160억원으로, 현재 평균 은행 예금 금리인 3.5%를 적용할 경우 월 4억6000만원의 소득이 발생해야만 이득이다. 통상 은행 금리보다 낮게 책정된 건물 월세는 건물 가격을 하락시키는 원인 중 하나다. 

또 상가 소유주의 세금 부담이 적다는 점도 월세를 낮추지 않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상가 보유 세금은 0.25%에 불과해 과세표준상 10억원인 상가를 보유했다면 매년 250만원 정도의 재산세만 부담하면 된다. 같은 가격이라도 높은 세율의 재산세에 종합부동산세까지 내야 하는 아파트와 부담 수준이 다르다. 상가도 종부세 적용을 받기는 하지만 공제금액이 120억원인 데다 건물분이 아닌 '상가 토지'에 대해서만 종부세가 적용된다.

주말인

가로수길을 제외한 서울 6대 상권(명동, 강남, 홍대, 청담, 이태원·한남)은 평균 15%의 공실률을 보이고 있다. 서울시 자료를 보면 임대료 수준은 ㎡당 △명동 거리(21만원) △강남역(약 13만원)등이다. 특히 명동 상권은 관광객이 돌아오며 지난 1년간 44%의 상점의 임차인이 바뀌었으며, 올해 상반기 매출은 전년대비 26.9% 성장했다. 

건물주들은 상권이 회복될 때까지 조금만 더 버티면 더 높은 월세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2000년부터 10년간 서울의 상업용지는 3000만㎡가 추가 공급됐다. 이는 건물의 용도변경과 고도제한 완화 등으로 건물이 더 높게 지어지고, 더 많은 상가용 부동산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도권에 대규모 주택 단지가 많이 공급되며 시내 중심으로만 몰렸던 상가 수요를 분산한 것도 시내 상권 공실률을 높이는 요인이 된다"고 했다. 실제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2018년부터 전국 86개 신도시에서 188만㎡의 상업용지를 팔았고, 이들 역세권 단지의 상업지역 비율은 37%에 달한다. 위례·광교·시흥·청라·마곡·하남·삼송 등에는 수년째 공실인 신규 상가들이 많지만, 이곳 상가주 역시 높은 가격에 분양받았기에 월세를 낮추지 않고 차라리 공실로 두는 것을 택했다. 

성 교수는 "현재 자영업자의 대출 잔액이 역대 최고 수준이고, 연체율도 가장 높다. 고금리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가게를 운영하겠다고 선뜻 리스크를 지는 사람이 많이 없을 것이다"라며 "공실을 줄일 수 있는 적정한 수준에서 월세가 조정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