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개월째 금리 제자리···가계부채·물가 '딜레마'에 빠진 한은 (종합)
7연속 금리동결, 시장 예상에 '부합'···"추가 인상 끝났나" 인상·인하 전망 모두 약화···금리인하, 빨라야 내년 3분기
[서울파이낸스 신민호 기자] "물가상승률이 목표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란 확신이 들 때까지 통화긴축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지속할 것입니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딜레마에 빠졌다. 물가상승률이 재반등한 가운데, 급증한 가계부채와 둔화된 경제성장률, 금융리스크 등이 한꺼번에 고개를 든 것이다. 말 그대로 인상도 인하도 택할 수 없는 딜레마 상황에 빠졌다.
결국 금통위의 선택은 또 한번의 동결이었다. 금리 인상과 인하의 가능성을 모두 배제하며 오랜 기간 꼼짝달싹 않을 것을 택한 것이다. 시장은 금통위의 침묵이 내년 3분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인상도 인하도 택할 수 없는 한은···7연속 기준금리 동결
30일 금통위는 통화정책 정례회의를 통해 기준금리를 기존 연 3.5%에서 동결했다. 앞서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시장전문가 96%가 금리동결을 전망했던 만큼, 예상된 결과라는 평가다.
한은 금통위는 올해 2월부터 10개월째 금리를 동결하면서, 시장에서는 사실상 금리인상이 종료됐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주목할 부분은 금통위의 미묘한 입장 변화다. 먼저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의 첫 문단에서 '추가 인상'이란 표현이 빠지는 등 금리 인상에 대한 언급이 약해진 것이 대표적이다.
추가 인상 가능성을 제시한 금통위원도 지난달 5명에서 4명으로 줄었다. 이날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금통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금통위원 4명이 물가 경로가 상향 조정되고, 불확실성이 남아있기 때문에 추가 인상 가능성을 열어 둬야 한다는 견해"라고 설명했다.
금리인하에 대한 언급도 빠졌다. 이 총재는 "지난 금통위에서 인하 가능성을 열어두자는 1명은 의견을 철회했다"며 "(중동 전쟁 등) 불확실성이 많이 줄어든 만큼, 긴축으로 오래 가면서 물가를 안정시키자는 입장으로 바뀌셨다"고 답변했다.
반대로 현재 금리 수준을 장기간 지속하겠다는 의지는 강해졌다. 지난 통방문의 '긴축기조를 상당기간 지속'이란 표현이, 이번엔 '긴축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지속'이란 표현으로 바뀐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총재는 "통상 '상당기간'을 6개월 정도로 생각하는데, 몇개월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며 "해당 표현의 앞에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으로 충분히 수렴한다는 확신이 있을 때까지'라는 전제가 있다. 그 조건처럼 인플레이션 경로가 목표 수준으로 떨어질 때까지라는 조건부로 해석해 주셨으면 한다"고 설명했다.
◇물가에서 금융안정으로···동결 택한 한은의 고심
이런 미묘한 변화의 배경은 혼재된 지표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물가상승률을 꼽을 수 있다. 앞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7월 2.3%까지 떨어졌으나, 국제유가 상승 여파 등에 10월 기준 3.8%까지 확대됐다. 이에 금통위는 올해와 내년의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각각 3.6%, 2.6%로, 0.1~0.2%p 상향했다.
다만 해당 상승세의 주요 원인인 국제유가와 농산물 가격 등이 안정화되면서 한은은 11월 중 물가 상승률이 상당폭 낮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여전히 높은 물가 수준에 경계감을 이어가야 하지만, 추가인상 유인은 감소했다는 의미다.
금융안정 부문의 리스크가 커졌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금리 수준이 10개월째 지속되고 있음에도, 국내 가계신용잔액이 3분기(1875조6000억원) 기준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이 한달새 6조8000억원이나 급증하는 등 증가세가 꺾이지 않고 있다.
결국 디레버리징(부채청산)을 위해 금리인상이 불가피하나, 이 경우 기업과 가계의 상환부담이 확대돼 여러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 실제 한은 금통위는 내년 경제전망치를 2.1%로 0.1%p 하향 조정하며, "수출 회복세에도 고금리 영향 등으로 내수회복 모멘텀이 약화됐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 총재는 부동산 PF 부문의 리스크에 대한 질문에 "지속된 고금리에 문제가 생기면 하나씩 구조조정을 해가는 과정"이라고 언급하며, 고금리 충격이 불가피함을 시사했다.
여기에 이 총재는 현재 금리수준이 긴축적이지 않다는 지적에 "여러 자료를 점검한 결과 지금 기준금리는 충분히 긴축적 수준"이라며 "이를 얼마 정도 오래 끌고 가느냐에 따라 그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판단한다"고 답변했다. "통화정책은 인상과 인하 두가지 선택지만 있는 것이 아니다"는 발언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김명실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물가목표 수준으로의 수렴시기가 지연될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어려우나, 가계와 비은행부문 관련 대출연체율이 높아지고 있다"며 "지방 부동산 경기 부진 등 금융안정 측면까지 고려할 때 추가 인상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제한적이었다"고 설명했다.
◇ "금리 인하 시점, 빨라야 내년 3분기"
이번 금통위에서 확인된 것은 한은이 금리 인하시점을 최소 내년 3분기로 예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방문 등을 통해 언급한 금리인하의 유일한 전제조건은 물가상승률이 목표치(2%)에 수렴한다는 확신이다.
금통위가 수정경제전망을 통해 제시한 물가경로를 살펴보면 내년 상반기 물가상승률은 3%로 목표치와 상당한 격차가 있다. 다만 내년 하반기는 2.3%, 2025년 연간 물가상률은 2.1%로 크게 둔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금리인하가 빨라야 내년 3분기가 될 것임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김성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통화정책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가계부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동산 가격 하락세가 주춤한 것도 PF 문제에는 긍정적이나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라며 "물가전망치도 상향 조정된 것을 보면, 내년 상반기 중 인하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하반기에도 1회 이상 인하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 역시 "물가 경로를 고려하면 내년 상반기에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은 낮다"며 "경제성장률도 하향됐지만 개선 흐름을 보이고 있어, 경제에 대응해 금리를 인하할 명분이 약하다. 금리인하는 빨라야 내년 3분기로 전망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