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부실 건설사 살리는게 능사 아니다
[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옥석을 가리려다 멀쩡한 옥석마저 솎아내선 안 되지 않습니까."
2024년 새해 시작부터 부동산 PF 문제가 건설‧부동산 경기에 뇌관이 되고 있다. 국내 건설사 시공능력 순위 16위의 중견기업 태영건설이 지난달 28일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을 갚지 못하겠다며 결국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작업)을 신청하면서다.
'터질 게 터졌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실제 건설업계에서 이젠 부도나 폐업이 먼 얘기가 아니다. 지난해 한 해 동안 366곳이 폐업하고, 21곳이 부도 처리됐다. 특히 지난달에만 전국 8개 건설사(종합 3개사‧전문 5개사)가 부도를 맞았다.
이 가운데 이번 사태가 특히 주목받는 것은 중견 이하 작은 건설사나 부실기업이 아닌 국내 20위권 내 상위 건설사의 유동성 위기가 경제 전반에 미칠 여파를 우려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건설 부동산 경기 하락 사이클을 지나오고 있는 상황이라 당분간 힘든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그러나 일각의 우려대로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사태로 인해 건설산업과 나아가 우리 경제의 근간이 흔들리는 위기가 찾아올 것인가. 업계 목소리를 빌리자면 "그러할 가능성은 적다"고 할 수 있다. 자금조달 시장 경색이 더욱 심화하고 대기업보다 취약한 중견·중소·지방업체의 위험성이 올라갈 수 있는 만큼 정부의 적극적인 부동산 PF 연착륙 대책이 필요하긴 하지만, 개별 기업의 사안을 건설업 전체로 확대 해석해선 안 된다는 의견이다.
실제 시장에서 태영건설의 다음 타자로 거론되고 있는 건설사들은 "위기설이 실제보다 부풀려졌다"고 호소한다. PF 우발채무가 과도하거나 유동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언급된 기업 대부분 일정한 대응력을 갖췄으며 자구 노력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어려운 업황 속에서 이른바 '블랙리스트'에 오르며 향후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까 걱정하는 모습이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충격 확산을 막기 위해 부실 PF 사업장에 대한 '옥석 가리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내 신용평가기관들은 건설업계 전반에서 건설사의 신용등급을 재검토하거나 줄하향하는 분위기다. 이참에 부실 건설사들이 정리되는 것도 건강한 건설업계 형성 차원에서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실제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건설사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땅덩이에 비해 건설사가 너무 많긴 하다"고 말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덮어놓고 건설업의 위기라고 보고 대응하기보다는 각각의 사업성과 재무 안전성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점검을 통해 부실을 선별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번 워크아웃이 단순히 업황 변동에 따른 문제인지, 부동산 PF 시스템의 문제인지, 해당 기업의 방만 경영이나 리스크 관리 부실 문제인지 등 주요 원인을 따져봐야 한다.
총선을 앞두고 정권의 이해관계로 점철된 '땜질식 처방'만 내놓는다면 제2, 3의 태영건설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