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 사용자···단체교섭 응해야"
택배노조 "역사적 판결, 즉시 교섭 나서야" CJ대한통운 "택배 산업 현실 반영 못한 판결"
[서울파이낸스 김수현 기자]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들과의 단체교섭을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는 중앙노동위원회의 판정이 항소심에서도 유지됐다.
택배기사를 직접 고용한 것은 아니지만, 원청인 CJ대한통운이 실질적인 사용자로서 작업환경 개선이나 노동시간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택배기사들과의 단체교섭에 직접 응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서울고법 행정6-3부(홍성욱 황의동 위광하 부장판사)는 24일 CJ대한통운이 "단체교섭 거부는 부당노동행위라는 재심판정을 취소하라"며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소송을 1심처럼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특수고용직인 택배기사들로 구성된 전국택배노동조합(택배노조)은 2020년 3월 단체교섭을 요구했으나 CJ대한통운은 이를 거부했다.
택배노조는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냈고 지노위는 CJ대한통운의 손을 들어줬지만, 중앙노동위는 재심에서 이를 뒤집어 부당노동행위가 맞다고 판정했다.
CJ대한통운은 이 판정에 불복해 2021년 7월 행정소송을 냈지만, 1심인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1월 "원고가 택배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한 것이 부당노동행위라고 판단한 중노위의 재심 판정은 이 법원의 결론과 동일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CJ대한통운은 1심에서 "집배점 택배기사들과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 관계를 맺지 않아 노동조합법상 단체교섭 의무가 있는 사용자에 해당하지 않고, 따라서 단체교섭 거부는 부당노동행위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노동조합법 제81조 1항 3호는 사용자가 노조의 단체교섭을 이유 없이 거부하는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정하는데, 기존 대법원 판례상 사용자는 '근로자와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을 맺은 자'를 뜻하기 때문에 교섭 거부가 부당하지 않다는 항변이었다.
하지만 1심은 CJ대한통운이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주로서 권한과 책임을 일정 부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정도로 기본적인 노동 조건에 관해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로, 역시 사용자로 봐야 한다며 종전 판례보다 기준을 넓게 해석했다.
대법원 판례는 이같은 사용자의 정의를 '노조 조직 개입'에 의한 부당노동행위를 판단할 때 적용했는데, 이번 사례와 같은 '단체교섭 거부'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외연을 넓힌 셈이다.
1심 재판부는 최근 원사업주(집배점)에 비해 거래상 지위가 우월한 사업주(택배사)가 원사업주 소속 근로자의 노무를 자신의 지배나 영향 아래 이용하는 계층적·다면적 노무 제공 관계가 확산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이같이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사실상 지배력이나 결정권이 없는 원사업주에게만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시키면 근로조건 개선과 유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목적으로 하는 근로자의 근로 3권이 온전히 보호받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2심 재판부는 24일 이같은 1심의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CJ대한통운의 항소를 기각했다.
이에 대해 CJ대한통운은 "기존 대법원 판례에 반한 무리한 법리 해석과 택배 산업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판결에 동의하기 어렵다"며 "판결문이 송부되는 대로 면밀하게 검토한 뒤 상고할 계획"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은 선고 후 "CJ대한통운은 시간을 끌기보다는 대법원 상고를 포기하고 오늘 판결을 수용해 즉시 택배노조와의 단체교섭을 진행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며 "만약 상고한다면 노조는 즉시 '교섭응낙 가처분신청'을 통해 단체교섭을 강제할 수 있는 적극적 조치를 취하고, 강력한 투쟁에 돌입할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