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리스크 해소, 삼성 컨트롤타워 부활 '촉각'···2010년엔 어땠길래
특검 여파 전략기획실 해체 2년 뒤 금융위기 여파에 '미전실' 부활 불확실성 증대, 그룹 총수 지원 조직 필요성 커져···검찰 항소 '변수'
[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불법 행위가 없었다고 판결하면서 삼성그룹이 과거 미래전략실(미전실)과 같은 컨트롤타워를 부활시킬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이번에 경영권 승계 작업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최지성 실장 등 미전실 수뇌부도 함께 무죄 판결을 받은 터다. 미전실도 무죄 판결을 받은 셈인데, 최근 상황은 글로벌 반도체 경쟁 심화 등 경영의 불확실성으로 그룹 경영을 지휘할 총수 지원을 위한 별도의 조직, 즉 컨트롤 타워의 필요성은 그 어느때보다 높다.
만약 삼성이 컨트롤타워를 부활시키게 된다면 2008년 삼성 특검 당시 전략기획실이 해체된 후 2년 뒤 미전실로 부활한 당시 상황과 비슷한 일이 재연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지난 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 지귀연 박정길 부장판사)는 5일 오후 2시 이재용 회장의 부당합병·분식회계 1심 선고 공판에서 이 회장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이 회장에 대해 "이 사건 공소사실 모두 범죄의 증명이 없다"며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이날 재판에서는 이 회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최지성 전 미전실장과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미전실 관계자 13명도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들은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실무적인 일을 수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었다. 법원이 이 회장과 함께 미전실에도 죄가 없음을 인정한 셈이다.
이에 따라 재계 일각에서는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과거 미전실 역할을 수행할 컨트롤타워가 부활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앞서 삼성그룹 미전실은 2010년 구성 이후 그룹 전체를 아우르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러다 박근혜-최서원(당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당시 뇌물공여에 핵심 역할을 한 부서라는 오명을 쓰면서 이재용 회장의 결정으로 2017년 해체했다.
미전실 해체와 함께 삼성그룹도 사실상 해체 수순을 밟았고 삼성전자를 포함한 주요 관계사는 이사회 중심의 자율경영이 이뤄지게 됐다. 그러나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고 신사업 모색을 위한 계열사 간의 시너지가 절실한 상황에서 이사회 중심의 경영은 의견을 한 곳에 모으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은 "작은 돛단배에는 컨트롤타워가 필요없지만 삼성은 어마어마하게 큰 항공모함"이라며 "컨트롤타워가 없으면 효율성과 통일성 측면에서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재 삼성그룹은 각 사업 영역별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TF를 구성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정현호 부회장이 이끄는 사업지원TF, 삼성생명은 이승호 부사장이 이끄는 금융경쟁력TF, 삼성물산은 이승호 사장이 이끄는 EPC(설계·조달·시공) TF가 각각 '미니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신사업 발굴을 위해 삼성전자에서는 부회장급 조직인 미래사업기획단을 신설했다. 미래사업기획단장은 전영현 삼성SDI 이사회 의장(부회장)이 맡았다. 신설 초기에 일각에서는 미래사업기획단이 미전실 역할을 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으나 삼성전자는 "미래전략실과 미래사업기획단은 전혀 다른 조직"이라며 이를 부인했다.
재계에서는 만약 삼성이 미전실과 마찬가지로 그룹 전체를 아우를 조직을 신설하게 된다면 올 연말 조직개편에서 결정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삼성은 2017년 미전실 해체 이후 약 8년만에 컨트롤타워를 부활하는 셈이 된다.
앞서 삼성은 1959년 이병철 창업회장 당시부터 회장 직무를 보좌하는 조직을 운영해왔다. 이 조직은 비서실로 시작해 구조조정본부, 전략기획실을 거쳐 미래전략실로 운영돼왔다.
2006년부터 운영된 삼성 전략기획실은 이건희 회장의 비자금 조성에 가담한 혐의로 2008년 해체됐다. 당시에는 전략기획실 해체와 함께 이건희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이학주 전략기획실장도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았다.
그러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이후 글로벌 경제위기 여파가 이어지면서 2010년 이건희 회장이 경영 일선에 복귀한다. 이와 함께 전략기획실 역할을 수행할 미전실도 부활했다.
최근 글로벌 경제상황이 미중 무역갈등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중동 전쟁 등으로 극한 상황에 치닫는 만큼 경영환경의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1.4%로 미전실이 부활했던 2010년 6.8%에 비하면 20%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이 때문에 사법리스크를 벗은 이 회장이 컨트롤타워 부활을 지휘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항소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고 삼성 내부에서도 컨트롤타워 부활을 위한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당장 윤곽이 드러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이 중요한 사건에 대해 1심 판결만으로 종료한 적은 거의 없다"고 밝혔다. 검찰이 항소를 제출하게 된다면 이 회장뿐 아니라 미전실까지 다시 재판을 치르게 되는 만큼 컨트롤타워 부활은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