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한국은 국가소멸 방치하는 중?
어느 한 집안의 예다. 6남매가 결혼을 하고 총 13명의 자손을 두었다. 이 때까지도 셋째를 낳으면 정부의 여러 지원혜택에서 제외되는 가족정책을 시행되었다. 2000년대 들어서서야 비로소 인구감소의 위기감을 갖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사회적 우려가 제기될 때까지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문제의 심각성을 크게 여기지 않았다. 정부가 그나마 앞서서 걱정을 시작했고 대책을 준비하는 듯했지만 대개의 정책들이 그렇듯 정권이 바뀔 때마다 원점으로 돌아가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그러는 사이에 젊은이들은 결혼을 안 하거나 못하는 단계로 들어섰다. 또한 결혼을 해도 출산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앞서 소개한 집안의 그 13명 자손들 가운데 4명은 아직 20대여서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사회적 걱정의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30~40대에 들어선 9명의 자손 가운데 결혼한 숫자는 단지 셋.
1/3 뿐이다. 특히 여자들의 비혼율이 높다. 셋이 결혼했고 그 자녀수는 총 세 명이며 셋 중 하나는 아이가 없다.
이들이 결혼 혹은 출산을 하지 못하거나 안하는 이유도 40대와 30대가 각기 다르다. 여자들인 40대의 경우 가사와 직업을 병행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그러나 30대들의 경우 남녀 공히 혼자 쓰기에도 부족한 소득으로 독립할 엄두가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 불안정한 소득으로 도저히 결혼할 여건이 되지 못한다는 게 코 앞의 장애다.
특히 이들 세대는 늘 다니는 직장을 언제까지 계속 다닐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어서 당장 소득이 있어도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할 수 없다고 호소한다. 살 집이 있어도 생활비의 안정적 수급을 확신하지 못하는 데 하물며 집값을 생각하면 그저 아득할 뿐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 집안의 문제가 전체 평균보다 더 심한 경우이기는 하나 앞으로는 이런 비율이 일반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예전처럼 직장생활 연차가 쌓이면 당연히 급여가 늘어나는 연공서열의 풍토가 사라져가는 직장문화를 생각하면 당장의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앞으로 사회로 진출한 미래세대까지도 희망을 갖고 결혼과 출산을 감행할 숫자는 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미 한국사회는 총체적 위기를 겪고 있다. 그 위기를 사회적으로 감내할 수준을 넘어 점차 임계점에 육박하고 있다. 이미 임계점에 다다랐다고 진단하는 학자들도 있다.
최근 정부는 지난해 일자리가 늘었다고 자화자찬했지만 불행하게도 그 늘어난 일자리라는 게 대부분 저임금의 노년층 대상 일자리일 뿐 청년층의 일자리는 줄어들었다는 게 젊은 층이 체감하는 현실이다. 청년층의 일자리는 곧 한국의 미래 산업생태계를 의미한다. 즉, 산업생태계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다.
최근 발표된 국세청의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중 통합소득은 세전 명목소득 기준으로 월평균 336만원이지만 중간 50% 이하에선 최저임금도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 50%에 속하는 계층이 간신히 평균 234만원으로 최저임금을 상회할 뿐이고 하위 30%의 경우 131만원의 소득에 그치고 있다.
실질소득은 물론 이보다도 더 낮아질 수밖에 없고 최저생계비에 미달하는 젊은이들이 결혼을 꿈꾸는 것은 만용에 가까운 현실이다. 2021년보다도 줄어든 소득 앞에서 젊은이들이 미래에 희망을 품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난 2년간 경제지표들은 모두 뒷걸음질을 치고 또 그로인해 이전 정부에서는 계속 일본보다 앞서 있던 성장률이 역전을 거듭하고 있다. IMF가 2022년 말 발표했던 한국, 미국, 일본의 성장률 전망치 가운데 미국과 일본은 그 전망치를 상회한 반면 유독 한국만 큰 폭으로 밑돌았다. IMF의 성장률 전망은 해당 국가의 잠재성장률을 기초로 내놓는 것임을 감안하면 한국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를 만들어낸 셈이다.
이런 상황은 젊은이들의 절망을 키울 뿐이다. 어려운 시절을 겪으며 성장했던 부모세대와 달리 이미 성장한 국가에서 태어난 젊은이들이 지금 겪을 무력감은 어줍잖은 출산장려정책 따위를 무위로 돌릴 뿐이다.
실타래처럼 얽힌 문제들을 그저 선 하나 긋는 식으로 풀어나가려 해서는 해결할 길이 없다.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모순들을 한 줄에 꿰어진 하나의 문제라는 통합적 인식 없이는 한국사회의 미래를 위한 답은 나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