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ELS 배상안에 고심 깊어진 은행권···"'배임' 우려, 법률 검토"
은행 판매 규모만 15조4000억원···"위법 부당행위 엄중 조치" 당국이 수습 노력 참작한다지만 배임 이슈 불거질까 '골머리' 은행권 '시뮬레이션'···"기본 배상비율 높아, 배상까지 긴 시간"
[서울파이낸스 이진희 기자]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 주가연계증권(ELS) 관련 분쟁조정 기준안이 나오면서 자율배상을 검토 중인 은행권의 고심도 깊어졌다.
투자 손실 전액을 배상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당국의 기준안을 놓고 예상했던 수준이라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배상규모 등을 따져보는 시뮬레이션과 법률 검토를 병행하며 분주한 분위기다. 특히 배임 이슈가 불거질 수 있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11일 금융감독원이 제시한 홍콩H지수 ELS 분쟁조정 기준안은 ELS 상품 판매·투자행태의 특수성을 고려, 손실 배상비율을 판매사 책임과 투자자별 특성을 세밀하게 따져 결정하는 구조다.
기준안에 따르면 금융회사는 △적합성(적정성) △설명의무 △부당권유 등 위반 여부에 따라 H지수 ELS 손실액의 기본 20~40%를 배상해야 한다. 은행의 경우 금감원 검사에서 투자자에게 적용되는 적합성원칙 또는 설명의무 위반 사항이 발견돼 20~30%의 기본배상비율 책정됐다.
개별 사례에 대해 구체적인 배상비율은 달라질 수 있으나, 경우에 따라 '판매사 일방의 책임'(배상비율 100%)이나 '투자자 일방의 책임'(0%)만 인정될 수도 있다. 다수 사례가 20∼60% 범위 내에 분포할 것이란 게 금감원의 예측이다.
은행, 증권회사 등 판매사들은 조만간 기준안의 수용 여부를 결정, 자율배상에 나설 예정이다. 자율배상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엔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의 조정절차를 밟게 된다. 조정안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판매사와 고객 간 법정 다툼이 이어질 수 있다.
분쟁조정기준안을 받아 든 은행권은 배상안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내면서도 당장 배상으로 인한 영향 분석 등에 돌입했다. H지수 ELS는 은행 판매 규모만 15조4000억원에 달한다. 지난 1∼2월 만기가 도래한 1조9000억원 가운데 은행은 1조원의 손실이 확정됐다.
무엇보다 자율배상이 배임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법률 검토에 나선 상태다. 4대 은행은 외국인 주주 지분이 많은 편으로, 은행이 자체 배상에 나선다면 주주가 배임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도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예상한 내용이긴 하지만, 기본 배상비율이 생각보다 높은 것 같다"며 "당국이 위법부당행위에 대해 기관·임직원 제재는 물론, 과징금을 부과하겠다고 한 만큼 여러 부분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이날 분쟁조정기준안을 발표하면서 "위법 부당행위에 대해 기관·임직원 제재, 과징금·과태료 등 엄중히 조치하되 고객 피해배상 등 사후 수습 노력은 참작할 예정"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배상 방침을 받아들이지 않을 순 없으나, 주주들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이 적어질 수 있어 배임 이슈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면서 "배상에 나서더라도 판매 규모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실제 고객들에게 배상이 이뤄지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릴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