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주총 키워드는 '주주와의 소통'···현실은 "죄송합니다"

삼성·LG 등 '주주와의 대화' 마련···주가 부양, 신사업 전략 질의 이어져 행동주의 펀드 활약, 경영진에 막혀···'주총 데뷔전' 치른 대표 '합격점'

2024-03-29     여용준 기자
한종희

[서울파이낸스 여용준 기자] 3월 주주총회 시즌이 기업 임원들의 사과와 반성으로 마무리됐다. 특히 지난해에는 글로벌 경기침체로 대부분 기업들의 사업이 위축되면서 주가를 끌어올리지 못한 만큼 올해 주총은 주주들 성토의 장이 됐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에코프로, 롯데손해보험, OCI, 태광산업 등이 이날 주총을 진행했다. 이들 기업을 마지막으로 주요 대기업들이 올해 주주총회 개최를 마쳤다. 

올해 각 기업 주총에서 눈에 띄는 지점은 '주주와의 대화'였다. 삼성전자는 올해 처음으로 '주주와의 대화' 시간을 가졌고 LG전자도 중장기 사업전략과 비전을 공유하며 주주들과 소통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주주와의 대화' 시간을 마련했고 네이버, SK텔레콤도 주주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주주와의 대화'는 최고경영책임자를 포함한 각 사업부문 주요 경영진들이 모두 참여해 사업현황과 전략을 소개하고 주주들의 질문에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동안 안건 별로 주주들의 질문을 받으면서 다소 혼란스러웠던 모습을 정리해 주총의 원활한 진행을 유도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올해는 대부분 기업들이 글로벌 경기 침체 영향으로 주가를 부양하지 못한 만큼 주주들의 질책이 이어졌다. 삼성전자 주총에서는 한 주주가 "이병철 회장님이 살아계셨다면 여기 있는 경영진들 자리 지킬 수 있었겠는가"라며 "지금이라도 사퇴하실 생각이 없나"라고 묻기도 했다.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당사가 발전할 수 있도록 임직원 전체가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으니 꾸준한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답했다. 

또 다른 주주는 SK하이닉스 대비 주가 부양이 더딘 점을 지적하며 올해 사업 전략에 대해 묻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 반도체 사업의 부진이 뼈 아팠던 만큼 이에 대한 질의가 이어졌다. 경계현 삼성전자 DS부문 대표이사는 "업황도 있고 준비를 못한 것도 사실"이라며 "근원 경쟁력을 회복해 시황 영향을 덜 타는 사업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LG전자 주총에서는 M&A에 대한 질의가 이어졌다. 조주완 LG전자 대표이사는 "JV(조인트벤처)나 인수합병(M&A)에 관심을 가지고 보고 있다"며 "빠르게 보여드릴 수 있는 게 최근에 나온 지분투자 정도고 M&A라는 게 상대가 있고 경쟁이 있어서 조금 더 가시화 되면 적극적인 소통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네이버 역시 지난 26일 진행한 주총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주주 질문에 답하는 시간으로 할해했다. 최수연 네이버 대표이사는 주가 부양 문제와 관련한 주주들의 질의에 "지적한 부분을 잘 인지하고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혁신이 죽은 것 같다는 말씀은 대표이사인 제게 주는 말씀으로 새겨듣겠다"라고 답했다. 

기업들이 '열린 주총'을 앞세워 주주들과 소통을 확대한 점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그렇지 못한 기업들도 있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주주와의 대화' 시간을 마련한 SK이노베이션은 주가 부양 계획과 주주환원 정책을 묻는 주주들의 질문에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있어 원론적인 답변 밖에 드릴 수 없는 점 죄송하다"고 사과만 반복했다. 

또 카카오는 정신아 신임 대표가 주주와의 대화에 불참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통상 대표이사 선임은 주총 의결을 통해 이뤄지고 이 자리에는 신임 대표이사가 참석해 인사말을 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정 대표는 카카오 주총에 불참한 것이다. 특히 지난해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의혹 등 회사 대내외 악재가 이어진 상황에서 '소방수' 역할로 등판한 정 대표가 어떤 메시지를 내놓을지 업계 관심이 모아졌었다. 

카카오 측은 "상법상 주총 의장을 맡는 현 대표가 주총 참석이 강제되는 것과 달리 내정자 신분은 관련 의무가 없다"고 밝혔다.

김영섭

◇ 행동주의펀드 활약 '눈길'···주총 데뷔전 치른 대표이사도 '주목'

올해 주총에서는 행동주의 펀드의 활약이 눈에 띄기도 했다. 금호석유화학 주총에서는 박찬구 회장의 조카이자 개인 최대주주인 박철완 전 상무와 손잡은 차파트너스가 주주제안으로 자사주 소각 관련 정관 개정과 사외이사 선임 안건을 내놓기도 했다. 다만 이들 안건은 주주들의 반대로 부결됐다. 

또 28일 KT&G 주총에서는 방경만 대표이사 선임을 두고 최대 주주인 기업은행과 행동주의 펀드 FCP(플래시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가 반대해 표 대결이 이뤄졌다. 표 대결에서는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방 대표의 선임을 찬성해 가결됐다. 다만 기업은행과 FCP 측이 추천한 손동환 사외이사가 이사회 진입에 성공했다. 

대부분 기업에서 행동주의 펀드의 적극적인 경영 개입이 가로막힌 반면 수용된 사례도 있었다. 29일 태광산업 주총에서는 행동주의 펀드 트러스트자산운용이 추천한 사내·외이사 3명이 이사회 진입에 성공했다. 

행동주의 펀드의 이 같은 활약에 대해 자본시장연구원은 "행동주의 펀드는 특정 기업의 주식을 대량으로 매수해 주주로 등재된 이후 의결권 행사 등 다양한 전략을 통해 기업가치 증대를 위한 전략을 추구하는 펀드"라고 밝혔다. 

또 올해는 주총 데뷔전을 치른 대표이사들이 다수 눈에 띄었다. 조주완 LG전자 대표이사와 김영섭 KT 대표이사, 박병무 엔씨소프트 대표이사가 주총 데뷔전을 치렀다. 이 가운데 김영섭 대표는 지난해 KT의 장기간 경영 공백 끝에 지난해 8월 31일 임시 주총에서 대표이사로 선임되고 정기 주총은 올해가 처음이다. 

KT 주총장에서는 정치권·검찰 낙하산 인사 개입 여부와 구조조정에 대한 질의가 이어졌다. 김 대표는 "양심에 손을 얹고 정치권과 검찰의 낙하산 인사는 없다", "인위적 구조조정은 없다" 등 발언으로 주주와 임직원들을 진정시키며 능숙한 진행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밖에 26일 셀트리온 주총에서는 미국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을 대신해 아들 서진석 대표이사가 주총 데뷔전을 치렀다. 이날 주총에서는 서진석 대표의 사내이사 재선임 안건이 가결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