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가상자산의 뜻밖의 위험

2024-04-05     홍승희 주필

최근 만난 한 지인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미국에 정착해 잘 나가던 지인의 조카가 젊은 나이에 갑자기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조카가 1000억원 가량 되는 전 재산을 가상자산에 넣어놓은 상태에서 유언 한마디 못하고 사망하면서 유족이 그 자산을 찾을 방법이 없다고 한다.

그 말을 하는 지인이나 듣는 필자나 서로 가상자산에 대해 잘 아는 게 아니어서 정확한 내용을 알기는 어렵지만 그 지인의 말로는 26자리인지에 달하는 비밀번호를 확인할 방법이 없어서 자산을 찾을 수가 없다고 한다. 아마도 개인키를 찾을 수 없다는 얘기가 아닌가 싶다.

통장이 있는 것도 아닌 가상자산의 경우 개인키를 잃어버리면 투자된 자산은 찾을 길이 없이 그냥 공중에 떠 버린다. 해킹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보안성을 강화하다보니 이런 문제들이 생기는 모양이다.

가상자산의 거래도 거래소를 경유해 이루어지지만 그 거래소의 형태도 일반 금융시장에 비해 다양하다. 중앙화 거래소(CEX), 탈 중앙화 거래소(DEX), P2P 거래소 등 거래소의 역할 비중에서 차이를 보이는 다양함을 보이며 아마도 앞서 언급한 지인의 조카 같은 경우 탈 중앙화 거래소나 P2P 거래소를 선택했기에 더욱 더 자금을 찾기 힘든 듯하다.

성공한 젊은이가 설마 자신이 그토록 갑자기 세상을 떠나게 될 줄은 몰랐기에 복잡한 가상자산 거래에 아내나 다른 가족을 개입시키지 않고 혼자 운영하다 일이 그리 된 것으로 보인다. 그 바람에 미국에 정착해 살던 아내와 어린 딸은 빈털터리가 돼서 한국의 가족들 곁으로 돌아오게 됐다고 한다.

이런 위험성은 그간 별로 고려되지 않았다. 그보다는 거래소 창업자들의 부도덕성으로 인한 위험성이나 P2P거래에서의 속임수 등이 문제를 일으켰을 뿐이다. 그로 인한 법적 문제들이 국내외에서 근래 부쩍 늘고 있다. 미국에서는 한 거래소 창업자가 25년형을 선고받은 일이 최근 벌어지기도 했다.

총선을 앞둔 한국에서는 여야가 모두 가상자산 참가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 여당은 코인에 대한 과세를 한 번 더 유예하겠다고 선심성 공약을 내놨고 야당은 ETF거래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약속을 던지고 있다.

이런 여야 정치권의 공약에 업계의 반응은 시원찮다는 평가다. 가상자산의 메커니즘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대책을 내놓을 인재들이 정치권에는 없는 게 아닌가 싶다.

가상자산 시장이 향후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다. 제도권에 안착했다고 보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제도권에서 아주 동떨어져 있는 것도 아닌 애매한 포지션이 그 미래를 불안하게 보도록 한다.

문제는 가상자산에 투입된 자금 규모가 제도적으로 명확히 규정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앞선 사례처럼 공중에 떠버린 자금들은 어디에 자리 잡고 있는지도 확인할 길이 없다. 즉, 기존의 통화량에 어떤 영향을 미치기 될지 현재로서는 제대로 계량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 등에서는 어떻게든 가상자산을 제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는 듯 하지만 현재로서는 제대로 된 방안을 찾지는 못하고 그저 금융사기의 위험성을 법적으로 처벌하는 수준에서 개입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정부 통제하의 금융시스템에 대한 거부감이나 익명성에 대한 높은 선호로 가상자산에 더 관심을 갖게 만들고 있지만 이것이 금융시스템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지 아니면 단지 틈새시장으로 머물지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행되어가는 정도로 봐서는 어쨌든 정부가 관리할 수 있는 범위를 빠르게 확정짓는 나라가 향후 더 폭넓은 영향력을 갖게 되지 않을까 싶다. 금융에 한발 뒤처진 한국의 경우 새로운 패러다임에 빠르게 익숙해짐으로써 그 간극을 메울 가능성도 커질 것이다.

이를 위한 법제화에 보다 적극적일 필요가 있다. 이제까지처럼 앞선 금융강국의 뒤따라가기에 급급하고 모방적 경제정책으로 현실안주형 방식을 탈피할 기회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지 현재 한국 경제부처의 관료적 사고방식을 보면 그다지 미덥지는 않다. 경제관료들이 기득권 카르텔에 기대어 시대적 도전을 외면하는 한 성장 동력을 잃어가는 한국경제에 밝은 미래를 내다보기는 어렵다. 경제학자들 또한 한국사회를 콘텍스트로 삼은 새로운 경제이론을 개발해낼 의욕이 아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