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건설사 사외이사 트렌드 '법조인'···法 리스크 대응 '사활'
GS‧HDC현산‧DL이앤씨‧삼성물산 등 주총서 법조계 인사 영입 "지배구조 분야 및 법적 분쟁 시 전문 역량을 발휘하길 기대"
[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올해 건설업계를 관통하는 경영 화두는 '사법리스크 관리'로 보인다. 지난달 마무리된 국내 주요 건설사 정기주주총회에서 새로 선임된 사외이사 면면을 보면 법조계 출신 인사를 영입하는 흐름이 두드러졌다. 지난해 중대재해‧부실시공 사고들이 잇따라 터지며 건설업계 전반에 퍼진 사법리스크 우려에 대응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8일 업계에 따르면 GS건설과 HDC현대산업개발(HDC현산)은 올해 정기 주총에서 법조계 출신 인사를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두 회사는 현재 국토교통부, 서울시 등과 행정 소송을 진행 중인 만큼 법적 대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으로 보인다.
GS건설은 지난달 29일 주총에서 황철규 법무법인 해광 대표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한 황 변호사는 인천지검에서 임관한 뒤 서울서부지검 검사장, 부산지검 검사장을 거쳐 대구고검과 부산고검 검사장까지 역임했다.
특히 GS건설은 지난해 4월 인천 검단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와 관련 국토부와 서울시로부터 받은 9개월의 영업정지 처분에 대한 행정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하고 법적 대응에 나선 데 따라 법조계 인사 영입을 통한 전문성 강화 및 리스크 대응이 주요 과제였을 것으로 보인다.
2021년과 2022년 연이어 광주 학동 철거 현장, 화정 아이파크 공사 현장 붕괴 사고를 낸 HDC현대산업개발은 지난달 28일 주총에서 창원지법 부장판사 출신 김진오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김 변호사는 서울대 법학과 출신 사법연수원 30기로,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임관한 뒤 서울중앙지법, 서울동부지법 등을 거쳐 정통 엘리트 법관 루트로 꼽히는 대법원 재판연구관까지 지냈다. 이로써 HDC현산 사외이사 가운데 법조계 출신은 기존 김주현 김앤장법률사무소 변호사와 함께 2명으로 늘었다. 김 변호사도 대검찰청 차장검사 출신의 전관이다.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사망사고(8명) 최다 기업'이란 오명을 쓴 DL이앤씨의 신규 선임 사외이사진에도 법조계 출신이 이름을 올렸다. 올해 임기 만료 이사들을 모두 교체하며 조직 쇄신에 나선 DL이앤씨는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 전주지방법원 판사 등을 지낸 남궁주현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 겸 금융감독원 금융투자업 인가 외부 평가위원을 새로 영입했다. 올해 초 검찰 5급 수사관 출신의 임원단을 선임했던 것과 같이 법률 대응과 대관 업무를 강화하겠단 의지로 읽힌다.
삼성물산도 올해 주총에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부장에서부터 대전·부산·대구고등검찰청 검사장 등을 지낸 김경수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를 신규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김경수 변호사는 중대재해·조세·공정거래 분야에 강점이 있는 법조인으로 알려져 있다. 건설업계 전반에 퍼진 중대재해법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이사회 차원의 법적 자문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앞서 지난 2~3년 동안 건설사들이 전세계적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기조에 맞춰 학계 환경 전문가 영입이나 명망 있는 여성 인사 발탁에 나섰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다. 최근 업계 내 잇단 붕괴‧사망사고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커지고 사법리스크 역시 확산한 데다 영업정지 등 행정처분도 강화되면서 이를 방어하고 대응하기 위해 건설사들이 과거보다 법조계 인사 영입에 힘을 쏟는 모습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사의 경우 중대재해나 현장 사고 등에 따른 법률적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과거에도 사외이사에 법조인을 선호하는 경향은 꾸준히 이어져 왔다"면서 "사외이사로 법조인을 영입하는 것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기업의 법적 분쟁이나 지배구조 분야에서 법률 분야 전문가로서 전문 역량을 발휘해 줄 것이란 기대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이달 초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매출 상위 30대 그룹의 237개 계열사 중 신규 사외이사를 추천한 71개 사의 주주총회 소집 결의서를 분석한 결과, 신규 추천 사외이사 103명 가운데 39.8%(41명)가 전직 관료 출신으로 조사됐다. 관료에는 법원과 검찰 출신이 포함된다. 반면 사외이사 경력 비중 순위에서 줄곧 1위를 유지했던 학계 출신은 올해 29명인 28.2%로 집계돼, 지난 3분기 35.1%에 비해 8.9% 포인트 낮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