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고물가 시대, 소비자가 기대하는 가격의 공정성

2024-04-26     강하영 한국소비자원 책임연구원

물가가 비상이다. 빵, 주류, 과일 등 국민들의 먹거리가 위협받고 있다. 지난해 빵 가격은 1년 전에 비해 9.5% 상승했다. 전체 물가상승률 3.6%를 감안하더라도 높은 수치이다.

세계 주요 밀 수출국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으로 밀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서 원자잿값 상승이 빵 가격 인상의 주요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원자잿값이 문제라면 전 세계적으로 빵 가격이 다 같이 올라야 하는데 과연 그럴까?

소금빵을 살펴보자. 일본 에히메현 야와타하마시의 '팡 메종'이라고 하는 일본의 한 빵 가게에서 2003년부터 팔기 시작한 소금빵은 2~3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유행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에서 3000원 정도에 팔리고 있는 소금빵은 일본 현지에서 110엔 정도, 한화로 약 1000원 정도에 팔리고 있다. 밀, 버터, 설탕 등 같은 재료로 만든 빵 가격이 3배 정도 차이가 나는 것이다.

글로벌 물가 통계 사이트인 넘베오(NUMBEO)에 따르면 2023년 한국의 식용 빵 한 덩이(500g) 가격은 2.83달러로 프랑스, 일본보다 높고 미국, 스위스보다는 낮은 6위를 차지했다. 미국과 스위스는 GDP가 2배 이상인 나라들이기 때문에 이를 감안한다면 한국의 빵 가격이 유난히 높다고 할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을 기준으로 지난 10년간 과자 가격이 37% 오른 데 반해 빵 가격은 68%나 올랐다. 밀, 버터, 설탕 등이 들어간 과자에 비해서도 빵 가격이 유독 올랐다. 소비자들이 빵 가격에 불만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소비자의 구매 의사 결정에 있어 가격은 중요한 고려 요소이다. 가격은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결정하는 주요 요소 중 하나이며 소비자는 가격이 공정하다고 체감할 때 해당 제품이나 서비스에 만족하게 된다. 빵 가격으로 돌아가서, 전쟁이나 기후변화로 인한 밀 가격 상승으로 전 세계적인 빵 가격이 올라가고 밀로 만든 과자나 라면의 가격도 같이 상승했다면 현재처럼 빵 가격에 대한 불만이 크지 않았을 것이다. 소비자들은 지금의 빵 가격이 공정하지 않다고 느낄 가능성이 높다.

소비자와 사업자 간에는 판매원가, 유통구조와 같은 정보에 대한 비대칭이 존재할 수 있어 소비자는 자신이 지불한 구매 가격에 대한 정당성, 적정성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가격 적정성 판단의 근거를 자신이 경험했던 가격의 변동, 다른 판매자의 가격 등으로 삼는다. 지난해보다 높은 가격, 외국과 비교해도 높은 가격, 비슷한 원재료가 들어간 다른 제품과 비교해도 높게 상승한 빵 가격에 대해 소비자들은 가격 공정성 점수를 몇 점이나 줄 수 있을까?

한국소비자원은 올해 '2024 소비자시장평가지표' 생산을 통해 빵 시장은 물론 교복, 주류, 중고차, 반려동물병원, 결혼서비스 등 40여 개 시장에 대한 소비자 인식 조사를 실시한다. 해당 시장의 가격이 얼마나 공정한지, 소비자가 해당 시장의 공급업자를 얼마나 신뢰하는지 등을 시장별로 평가하여 각 시장이 소비자지향적으로 작동하는지를 심층분석 할 예정이다.

이번 결과를 통해 고물가 시대에 가격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이 어떻게 변화했을지를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포인트이다. 가격 공정성을 파악하고 나면 이를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은 사업자와 정부의 몫이다.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정책에 스며들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