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좀비기업 안고 가기의 결말
근래 한국정부가 자동 퇴출될 수준의 부실 건설업체들을 어떻게든 안고 가기로 작정하면서 30년 전 일본의 전철을 밟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많다. 레고랜드 사태에 50조원을 긴급 투입해서 일단 금융경색을 막았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런 정부의 행동은 이후 건설경기 침체 국면에서 부실 건설업체들에게 긍정적 신호를 줘서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 50조원이면 전 국민에게 1인당 1백만 원의 지원금을 줄 수도 있는 돈이다. 지금처럼 소득은 늘지 않는데 물가는 치솟는 상황에서 그 돈이 개인이 소비할 수 있는 돈으로 풀린다면 당장 폐업이 줄을 잇고 있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살아나며 사회 전반적으로 활발한 경제활동이 일어날 수 있는 큰돈이다.
이는 지난 팬데믹 기간 중 지급된 재난지원금으로 그 효과를 확실히 증명했다. 그러나 한국의 경제관료들이나 현 정부 관계자들은 기업에 주는 돈은 경제를 살리고 국민 개개인 및 가계로 가는 돈은 그냥 낭비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면서 기업의 도덕적 해이는 심해진다.
한국의 일자리는 대기업보다 중소 상공인이나 자영업자들로 주로 몰려 있다. 그 일자리가 줄어들면 당연히 가계소득은 줄고 소비는 위축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걸려들 수밖에 없다.
일본이 이미 30년 전에 걸었던 실패의 길을 왜 한국 정부가 답습하려고 하는지는 이해하기 힘들다. 당시 일본은 아마도 부실기업일망정 부도기업이 줄을 잇는다면 높아질 실업률 등을 염려했을 수는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선택으로 인해 일본 정부는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정부부채 비율을 갖게 됐고 정책적 운신의 폭이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또한 그렇게 살려둔 기업들이 이후 결코 높은 생산성을 회복할 수 없어 서서히 폐업의 길로 들어선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이 떠안았고 그 후유증은 지금도 일본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실상 좀비기업은 산업생태계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밖에 없고 그렇기에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기업은 도태되는 것이 당연하다. 마치 우리 피부에 새살이 돋아나는 만큼 각질도 일어나서 목욕으로 이를 적절히 제거해야 건강한 피부를 유지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낡은 피부세포가 각질로 변해 우리 신체에서 떨어져 나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수용하지 못하면 피부가 거칠어지는 것을 넘어 각종 피부병을 유발할 수도 있다. 산업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기업 역시 각질과 마찬가지여서 도태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데 경제관료나 언론들이 호들갑을 떨어대며 이를 막으려 하는 게 작금의 상황이고 또 일본이 30년 전에 겪은 일이다.
일본이 30년 전 그런 선택을 함으로써 미국에 이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라던 일본은 긴 시간 침체 속에 허덕였다. 그 결과의 하나로 히키코모리라는 일본 특유의 은둔형 외톨이들을 양산해낸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은둔형 외톨이들이 지금 한국에서도 차츰 늘어가는 징조를 보여 걱정스럽다. 생활을 안정시키고 미래를 위해 저축도 좀 할 수 있는 정규직 취업은 갈수록 어려워지다 보니 아르바이트로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입만 얻으면 만족하고 골방에 박혀 지내려는 젊은이들도 아직은 소수이지만 늘어나는 추세다.
또 소위 MZ세대라 불리는 젊은이들 중 다수는 은둔형 외톨이는 아니지만 한두 해 일해서 여행경비를 벌면 직장 걷어차고 나와 세계여행을 즐기며 그야말로 ‘오늘만 살자’는 식으로 삶의 방식을 정하는 이들이 숫자로는 은둔형 외톨이보다 훨씬 많지 않을까 싶다.
지금 한국은 기득권의 장벽이 너무 견고하고 높아서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그들은 아예 미래를 머릿속에서 지워낸 듯 행동한다.
지금 정부가 도태돼야 할 좀비기업들에 퍼붓는 돈이면 젊은 세대에게 미래의 길을 보여주고 또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거들어줄 대책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망할 수밖에 없는 그 기업들에 쏟아 붓는 돈도 결국 그 전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다. 그 돈으로 길을 찾는 이들에게 미래의 비전을 보여주고 또 식비 지출조차 고민하며 숨이 턱턱 막히는 가계를 부축하는 데 쓰는 게 답도 없는 좀비기업에 퍼붓는 것보다는 훨씬 생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