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EV3 가격 못 밝힌 기아···전기차 대중화 우려
[서울파이낸스 문영재 기자] 기아가 지난 21일 온라인 프레스 콘퍼런스를 열고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EV3를 공개했다. 콘퍼런스를 주관한 송호성 기아 사장은 "EV3는 전기차 대중화를 이끌 모델이자, 그간 고객들이 전기차 구매를 주저하게 만든 문제들을 해결한 모델"이라고 밝히며, 신차 상품성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디자인, 주행성, 편의성 등 EV3의 장점들로 꽉꽉 채운 발표가 30여 분간 이어졌다. 송 사장은 발표 끝에 "EV3는 차급을 뛰어넘는 경험을 선사하는 동시에 전기차 시장에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 것"이라며 "이 차를 통해 더 많은 이가 전기차를 경험할 수 있게 하겠다"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서 전기차 대중화를 반드시 실현하겠다는 포부가 느껴졌다.
그런데 어딘가 조금 께름칙했다. 전기차 대중화의 핵심인 가격 정보가 쏙 빠졌기 때문이다. 당연히 발표 이후 진행된 질의응답에서 가격에 관한 질문이 쏟아졌다. 송 사장은 "아직 가격을 정하지 못 했다"라고 해명하며 "하위 모델 시작가를 보조금 포함 3000만원대 중반에 책정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1회 충전 500km 정도는 주행할 수 있게 개발단계부터 신경을 썼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하루 뒤 인터넷은 '3000만원대 중반 가격에 주행거리 500km를 실현한 전기차 EV3가 나온다'는 내용의 기사들로 도배됐다. 자동차 관련 커뮤니티들도 이러한 기사들을 공유하며 기대감을 키웠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정보였다. 3000만원대 중반의 EV3는 58.3kWh 배터리를 탑재한 스탠다드 모델을 가리킨다. 1회 충전 주행거리 500km대를 실현한 EV3는 81.4kWh 배터리를 탑재한 판매 가격 3000만원대 중반 이상의 롱레인지 모델을 의미한다. 결국 좋은 것들만 취사선택해 발표한 송 사장의 불확실한 말이 오보를 초래한 것이다.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지난해 국산 전기차 판매량은 11만9939대로 전년 대비 6.2% 감소했다. 올 들어 4월까지 국산 전기차 시장 판매량도 2만3133대를 거둬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9.5% 줄었다. 전기차 대중화라는 특명을 부여받은 EV3 어깨 위로 하락세가 뚜렷한 국산 전기차 시장을 회복시켜야 한다는 무거운 짐이 얹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이 기아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한 것은 아닐까? 상품성 자체는 매우 뛰어나다. 완성도 높은 내외관 디자인, 두 종류의 파워트레인, 차급을 뛰어넘는 편의·안전사양 등을 갖췄다. 전기차 시장 수요 자극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같은 노력이 오히려 가격경쟁력을 낮추는 독이 되는 건 아닌지 우려한다. 주행거리 500km대의 EV3 롱레인지 모델을 사려면 4000만원 이상을 줘야 한다는 얘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전기차 대중화에 앞장서겠다는 기아의 계획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