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공사비 영향은/上] '물가변동 배제 특약' 무효···공사비 분쟁 새 분수령될까

대법서 '물가변동 배제특약' 무효 판결···계약 조정 가능성 열려 3년 새 공사비 검증 2.3배 늘었는데···관련 소송 더 본격화될 듯 "시행사 귀책 사유 인정된 사례···모든 사안에 적용될지는 미지수"

2024-06-19     오세정 기자

최근 코로나19와 글로벌 물가 상승, 건설노조‧화물연대 파업 등 여파로 원자잿값이 상승하면서 치솟은 공사비를 둘러싼 발주처와 시공사 간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또 발주처가 공사비 인상분을 반영해주지 않아 사업성이 떨어지자 공공공사에서는 건설사들이 사업을 포기하거나 입찰에 나서지 않는 사례도 늘고 있다. 공사비 급등이 건설업계에 미친 영향을 사례 중심으로 상(上), 하(下)에 나눠 분석해본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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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민간 공사 계약에서 물가 상승분을 공사비 증액에 반영하지 않기로 한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은 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건설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물가 상승으로 인한 건설 비용 증가를 건설사가 홀로 부담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취지의 이번 판결이 건설업계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그간 계약 준수를 강조하며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유효성을 인정해왔던 법원이 공사비 상승 부담을 건설사 등 수급인이 모두 떠안는 것은 불공정 거래라는 판결을 내놓았다. 물가변동 배제 특약은 시공사가 착공 후 추가 공사비 요구를 금지하도록 하는 내용의 도급계약상 특약 사항이다. 

앞서 부산고등법원 재판부는 부산의 한 교회가 시공사에 제기한 선급금 반환 청구에 대해 "시공사의 귀책 사유 없이 착공이 8개월 이상 늦어지는 사이 철근 가격이 두 배가량 상승했는데 이를 도급 금액에 전혀 반영할 수 없다면 수급인(시공사)에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에 해당한다"며 특약을 무효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을 제한할 수 있다고 판단한 부산고등법원의 판결을 확정한 것이다. 

법원이 인용한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제5항'에는 "계약 내용이 당사자 일방에게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에 특약을 무효로 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구체적으로 계약 체결 이후 설계 변경과 경제 상황 변동에 따른 계약 금액 변경에 대해 상대방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것을 '불공정'하다고 본 것이다. 

현재 업계에서는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으로 인한 원자잿값 상승이 공사비 급증으로 이어지면서 공사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 한국부동산원이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진행한 공사비 검증 건수는 총 11건이며, 지난 2020년 13건 이후 △2021년 22건 △2022년 32건 △2023년 30건 등 3년 새 2.3배 늘어났다. 올해도 가파른 속도로 늘고 있어 지난해 수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발주처와 시공사 간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유효성을 다투는 분쟁이 늘어난 상황이다. 최근 불거진 KT와 쌍용건설의 경기 판교 신사옥 공사비 분쟁의 쟁점도 이 특약이다. KT는 특약을 이유로 쌍용건설의 공사비 171억원 인상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현재 법적 소송을 진행 중이다. 특히 KT는 쌍용건설 외에도 현대건설, 롯데건설, 한신공영 등과도 물가변동 배제 특약이 담긴 도급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GS건설은 지난 3월 서울 강북구 미아3구역 주택 재개발 정비사업조합에 물가 상승에 따른 공사비 인상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자 소송가액 322억9900만원 규모의 공사 대금 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2020년 2월 롯데쇼핑 '광주 광산구 쌍암동 주상복합신축공사' 착공에 들어간 현대건설은 공사 기간 글로벌 원자재 수급 대란으로 철근, 시멘트, 레미콘 가격 등이 연쇄 급등한 데 따라 롯데쇼핑 측에 140억원의 추가 공사비를 요구하고 있다. 롯데쇼핑 측은 특약을 이유로 공사비 증액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법원이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5항'을 민간공사에서도 인정한다는 판결을 확정한 데 따라 건설업계에서는 계약 조정 가능성이 열린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특히 최근 정부가 이례적인 물가 상승을 감안해 물가변동 배제 특약의 효력이 제한돼야 한다는 태도를 보인다는 점도 주목하고 있다. 앞서 지난해 국토교통부는 민간건설공사 표준도급계약서를 개정해 물가변동에 따른 계약금액 조정 방식을 구체화한 바 있다. 기획재정부도 국토부에 이어 '물가변동 배제 특약은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놨다.

이와 관련,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변호사는 "특약을 무효화할 수 있다는 예외 사례가 생겼다는 점에서 관련 소송이 늘어날 것으로 본다"면서 "기존에 공사비를 조정하지 않고 계약 내용을 따르려던 사업장에서도 해당 판례로 계약 조정 가능성을 검토해 법원에 판단을 맡기는 경우가 많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판결이 업계 전반에 적용될 지는 미지수라는 의견이 나온다. 김 변호사는 "특약이 일률적으로 무효가 아니고 해당 사례의 경우 공사 지연에 대한 책임을 물어 시공사가 불공정한 지위에 있다고 판단한 사례"라면서 "공사비가 급등하긴 했지만 이것이 쟁점이라기보다 시행사의 특별한 사정, 귀책 사유가 인정된 것이기 때문에 불공정 지위에 있다거나 귀책 사유에 대한 판단이 개별 사안에 따라 달라지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