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R&D 예산 '제자리 복구' 후 "역대 최대 증가"···과학계 우려 '여전'

내년 R&D 예산 24.8조 규모 책정···삭감 전 대비 1000억원 증가 '3대 게임체인저' 부문에 3.4조 투입···탄소중립·수소 분야 회복 못해 황정아 의원 "말장난식 예산···물가상승 고려 시 사실상 삭감"

2024-06-28     이도경 기자
박상욱

[서울파이낸스 이도경 기자] 정부가 내년 주요 연구개발(R&D) 예산을 올해 대비 13.2% 늘린 총 24조8000억원 규모로 책정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번 증액과 관련해 "역대 최대 규모"라고 강조했지만, 대규모 삭감 이전인 지난해와 비교하면 1000억원(0.4%) 증액에 그친 수준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5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안'이 27일 열린 제9회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의에서 확정됐다고 밝혔다.

이날 확정된 조정안에는 이달까지 검토된 예산인 24조5000억원이 담겼으며, 오는 9월 국회에 제출할 정부안 편성까지 3000억원을 더 반영할 방침이다. 예정된 3000억원은 기획재정부와 이미 협의를 마쳐 사실상 확정된 금액이라고 과기정통부는 설명했다.

구체적으로는 인공지능(AI)-반도체, 첨단바이오, 양자 등 이른바 '3대 게임체인저' 기술에 3조4000억원을 투입한다. AI R&D에는 1조1000억원을 투입해 차세대 AI와 AI반도체 투자를 확대한다. 첨단바이오는 올해 6930억원에서 내년도 2조1000억원으로, 양자 분야는 953억원에서 1700억원 규모로 각각 늘었다.

올해 새로 도입한 '혁신·도전형 R&D' 분야에는 약 1조원을 투입한다. 기초연구에는 올해보다 11.6% 늘어난 2조9400억원을 투입하며, 도약 연구를 신설해 우수 성과자의 후속 연구를 지원한다. 올해 대규모 예산 삭감 사태를 겪은 정부출연연구기관에는 올해 대비 11.8%, 지난해 대비 600억원 증가한 2조1000억원가량을 투입한다. 

특히 올해 '대규모 R&D 예산 삭감' 사태의 칼날이 지나가지 않은 분야들도 대부분 예산이 증액됐다는 점이 눈에 띈다. 지난해 5000억원에서 올해 1조8000억원으로 대폭 늘어 논란이 된 '글로벌 R&D'에는 내년에도 3000억원을 늘린 2조1000억원을 투입한다.

지난 27일 공개된 '분야별 투자규모 상세내역'에 따르면 이차전지는 지난해 1100억원에서 올해 1400억원으로 늘어난 후 내년 1800억원으로 증액됐으며, 같은 기간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는 6400억원에서 6600억원으로 증가한 후 내년도 8100억원으로 늘었다.

반면 탄소중립과 수소 등의 분야는 소폭 증액에도 예산 삭감 이전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내년도 탄소중립 분야 예산은 2조2000억원으로 올해 대비 7.7% 늘었으나, 예산 삭감 전인 2조4000억원과 비교하면 감소했다. 수소 부문 역시 올해 대비 8.9% 늘어난 2500억원으로 편성됐으나 지나해 대비 약 200억원 줄었다.

류광준 과기정통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총액은 올해와 지난해 이상이지만 분야별로는 2023년보다 못 미치는 분야도 있을 수 있다"며 "예산 분야별 선택과 집중을 하거나 거품을 걷어내는 상황에서 그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학계에서는 이번 R&D 예산 규모 복원 자체는 다행스러운 일이라면서도, 올해 예산 삭감으로 현장에 끼친 파급력을 고려하지 못한 '조삼모사'식 예산이라는 볼멘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의 '과학기술계 이권 카르텔 타파'라는 주문에 맞춰 올해 R&D 예산을 지난해 대비 약 4조7000억원(14.7%) 삭감했다. 이에 과학기술계는 예산안 삭감으로 대학원생과 박사 후 연구자 등 학문 후속세대가 연구 동력을 잃고 한국 과학인재 양성에 큰 차질을 빚을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업계 관계자는 "예산을 다시 늘린 것 자체는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미 예산 삭감으로 많은 분야에서 연구의 연속성이 단절된 상황에 예산을 단순 복원하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며 "아직까지는 세부 예산 내역 등 구체적인 수치나 방안이 나오지 않은 만큼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황정아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27일 기자회견을 통해 "할 말도 잃게 만든 말장난식 예산"이라며 "발표 내용을 모두 수용하더라도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실질 R&D예산은 삭감되는 것인데, 이걸 역대 최대 규모라 자화자찬 하는게 말이 된다고 보느냐"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아직 반영도 되지 않은 3000억 규모 사업을 올해 R&D 예산에 포함시키는 것은 숫자 장난에 불과하다"며 "정부가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하기 전 R&D 예산을 제대로 복원하고, R&D 추경에도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