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억원 이하 주택' 신생아 특례대출···정책발 '집값 키맞추기' 우려
대출 시행 후 9억 이하 아파트 거래 52% 증가···서울 외곽 아파트 거래·집 값↑ 지난해 7억원대 아파트, 올해 8억 중후반부터 거래···외려 9억원 초과는 없어 "가격 제한과 신혼부부만 대상이라 전체 부동산 시장에 영향 주진 않을 것"
[서울파이낸스 박소다 기자] 정부가 신생아 특례대출 가능 대상을 9억원 이하 주택으로 설정하면서 서울 내 상대적으로 외면받았던 지역들의 집값이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이들 중 일부 지역에선 집값이 9억 턱밑까지 급등하는 '키 맞추기' 현상을 보이고 있어 우려를 낳는다.
2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서울 소재 9억원 이하 아파트의 매매 거래량은 신생아 특례대출 시행 이후 늘어나는 추세다. 국토교통부 통계를 보면 올해 1월 1363건이었던 9억원 이하 서울 아파트의 거래량은 △2월 1298건 △3월 2006건 △4월 2000건 △5월 2026건으로 증가 추세에 있다. 신생아 특례대출이 시행되기 전인 1월과 최근을 비교하면 52%나 증가한 수치다.
자치구별로 보면 △노원구(324건) △구로구(190건) △성북구(189건) △강서구(163건) △은평구(132건) 순으로 많이 거래됐다. 이들 지역은 서울에서도 상대적 외곽 지역으로 꼽히는 곳으로, 9억원 이하 주택 비중이 큰 곳이다.
신생아 특례대출은 대출 신청일 기준으로 2년 이내에 출산·입양한 무주택 가구나 1주택 가구(대환대출)에 최저 연 1%대 금리로 5억원까지 주택 구입자금을 빌려주는 제도다. 9억원 이하, 전용 85㎡ 이하 주택이 대상이다.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라면 주택담보대출비율(LTV) 80%를 적용한다. 시행 이후 4월 말까지 1만4648건(3조9887억원) 대출이 접수됐다.
문제는 9억원 이하 주택의 거래량이 증가하면서 기존 7~8억대의 아파트들의 매매 가격이 이른 바 '9억원 키 맞추기'식으로 급등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책 대출로 인해 급매물이 소화되고 거래량이 증가하면서 집주인들이 아파트 호가를 올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국토부 실거래가를 보면 지난해만 하더라도 7억원대 매매 계약 체결이 주를 이뤘던 서울 양천구 신월동 '목동센트럴아이파크위브' 전용 59㎡이 올해 들어 체결된 23건의 매매 계약들이 대부분 8억원 중후반부터 거래됐다. 외려 9억원 초과 건수는 3건에 불과했다.
해당 지역의 매물을 중개하는 공인중개사 A씨는 "이 지역에 중저가 아파트가 귀하다 보니 9억 이하 매물 문의가 꾸준히 들어온다"며 "8억원 초, 중반대 매물은 다 나갔고 9억원에 근접한 매물만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매매 수요자가 많기 때문에 9억원 이상으로 내놓는 집주인들이 더러 있는데 오히려 계약되지 않아 9억에 맞춰야 한다고 집주인들을 설득할 때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1월 8억500만원에 매매된 노원구 월계동 '한진한화그랑빌' 전용 84㎡도 이번 달 8억9500만원에 거래됐다. 강동구 둔촌동 '현대4차' 전용 84㎡ 또한 2월 8억1000만원, 지난달 8억9000만원으로 상승거래 됐다. 강서구의 경우 아파트 평균 거래금액이 올해 1월 7억2859만원에서 이번달 8억5618만원으로 18%나 급등한 모습이다. 뉴타운 정비사업이 활발히 진행돼 신축 대단지 아파트가 여럿 들어선 은평구 지역의 아파트도 상황은 비슷하다.
이 같은 현상은 3년 전 정책금융상품 보금자리론 출시 당시에도 기준요건인 '6억원' 미만 아파트가 밀집한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와 금관구(금천·관악·구로구)에서 집값이 6억까지 급등한 사례와도 유사점을 보인다.
시장에서는 정부의 정책 대출로 인해 중저가 아파트 가격이 지금보다 더 자극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3분기부터 대출 신청 시 부부 합산 소득 기준도 기존 1억3000만원에서 2억원으로 대폭 완화돼 아이를 낳은 신혼부부라면 대부분 특례대출을 이용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또 서울 아파트 시장의 약 50%를 차지하는 9억원 이하 주택들의 평균 매매 가격이 오르며 인근의 다른 아파트 가격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있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대부분의 신생아 출산 가정이 저리 대출의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돼 수도권 거주자의 내 집 마련 욕구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며 "물량이 줄 것으로 전망되는 지역은 집값이 급등할 수 있기 때문에 시장 모니터링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이 같은 움직임은 대상 자체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부동산 시장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연구위원은 "부부합산소득 기준이 완화되지만 주택 가격이 9억원으로 제한됐기 때문에 '마용성'과 강남권은 영향이 없고, 서울 외곽이나 수도권 아파트 가격은 올라갈 것"이라고 짚었다.
윤지해 부동산R114 연구원은 "9억원 이하 매물은 빠르게 소진되겠지만 대출 가능 대상이 아이를 낳은 신혼부부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시장 전체를 움직일 만큼 수요가 많지 않다"라며 "또 9억원이 넘으면 대출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해당되는 집들의 매매 가격이 박스권에 갇히는 형태에서 움직일 것"으로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