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제2의 테라·루나 사태' 막을 수 있나
[서울파이낸스 정지수 기자] 테라·루나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 씨의 한국 송환이 또다시 미뤄졌다. 몬테네그로 법원의 한국 인도 결정에 대해 현지 검찰이 재검토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권씨의 한국행이 미뤄지면서 피해자들은 언제가 될 지 모르는 피해 구제를 위해 기약없는 기다림을 또다시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난 2022년 5월 가상자산 루나가 폭락해 전세계적으로 400억달러(약 52조원)으로 추산되는 막대한 투자 피해가 발생했다. 권씨는 폭락 사태 발생 이전에 해외로 도주하기 위해 싱가포르로 출국하면서 잠적했다.
이후 그는 아랍에미리트(UAE)와 세르비아를 거쳐 몬테네그로로 잠입을 시도했지만 몬테네그로 현지 공항에서 위조 여권이 발각되면서 현지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위조 여권 사용 혐의로 징역 4개월을 선고 받고 복역하다 지난해 3월 23일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뒤 현재 외국인수용소에 임시 감금된 상태다. 이후 송환절차를 거쳐 해외로 추방 예정인 상태인데, 현재 권씨의 송환국에 대해 여러번의 번복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4월 10일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은 권씨에 대해 범죄인 인도 허가 결정을 내렸고, 밀로비치 몬테네그로 법무부 장관이 그간 권씨의 미국행 입장을 밝혀온 터라 언론들은 앞다퉈 미국행이 거의 확실시 됐다고 보도했다.
예상을 뒤엎고 지난 2일 몬테네그로 고등법원은 최종적으로 권 씨의 한국행을 허용했지만, 이에 다시 몬테네그로 대검찰청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몬테네그로 대법원은 범죄인 인도와 관련한 대검찰청의 적법성 판단 요청에 대한 결정이 나올 때까지 권 씨의 한국 송환을 보류하기로 했다.
이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내 피해자들의 피해 구제다. 금융위원회는 이 사건으로 국내 피해자는 약 28만명으로, 손실액은 3000억원대에서 많게는 조 단위에 이른다고 밝힌 바 있다.
국내 법조계에서는 권 씨가 미국으로 가는 것 보단 한국으로 송환되는 것이 국내 피해자 구제에 유리할 것으로 본다. 미국으로 보내지면 미국의 피해자들의 손해 배상을 위한 민사 재판을 받아야 하고, 그 경우 우리나라 피해자들의 피해 보상은 뒷전이 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문제는 복잡하다. 한국으로 송환된다고 해도 국내 피해자들이 충분히 보상 받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구체적인 피해액을 산정하기도 어렵고, 권 씨가 피해금액을 보상해줄 재산을 가지고 있는지도 불투명하다. 일부 피해자들이 피해 보상을 못 받을 바에 "차라리 미국으로 보내서 무거운 죗값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법조계에 따르면 피해자들이 충분한 구제를 받기 위해서 '증권집단소송'을 해야하는데, 이는 루나가 증권으로 규정됐을 때의 얘기다. 현재 국내 사법부는 루나를 증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한 전문가는 "이런 (증권으로 인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피해자들은 권 씨의 '사기 혐의'를 입증해 손해 배상을 받는 게 최선인데, 현 법률 상 미공개 정보 이용 및 시세조종을 사기죄로 처벌할 수는 없어서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달 19일부터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됐다. 이로 인해 가상자산 사업자는 앞으로 이용자들의 예치금을 은행에 예치 혹은 신탁해서 관리해야 한다.
이번 시행으로 가상자산시장이 제도권 안으로 처음 들어오는 만큼 그동안 가상자산시장에 존재했던 법률 공백을 완벽히 메꿀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제 2의 테라·루나 사태'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희망도 가지는 듯 하다.
다시는 이러한 가상자산 범죄로 막대한 피해자들이 나오지 않도록 철저한 제도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테라/루나 사태는 미리 예견된 사태라고 볼 수 있다. 암호화폐 시장의 불건전성, 즉 시장 방치와 더불어 제도의 부재와 무관심이 피해자를 키웠다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