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있을 수 없는' 우리은행서 벌어진 'CEO 부당대출'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대형 시중은행인 우리은행에서 전직 금융지주 회장이 연루된 초유의 '부당대출' 사고가 일어났다. 횡령 등 대형 금융사고의 중심에 있던 우리은행은 번번이 "환골탈태" 하겠다며 반성문을 제출했지만 그룹 내 만연한 내부통제 부실과 안일한 조직 분위기가 계속되면서 사고재발 방지 의지와 능력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당국 발표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2020년 4월 3일~2024년 1월 16일 손태승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친인척을 대상으로 616억원(42건)의 대출을 실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616억원 중 350억원이 부당대출이었으며 전체 대출 중 269억원은 부실이 발생하거나 연체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부당대출은 손 전 회장의 친인척이 대표·대주주로 등재된 업체에 대출을 무리하게 내주거나, 친인척이 허위로 의심되는 서류를 제출했음에도 별도 사실확인 절차 없이 그대로 대출을 실행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특히, 손 전 회장이 우리은행장 및 지주 회장으로 취임하기 전 해당 친인척 관련 대출은 4억5000만원(5건)에 불과했으나 취임 이후 약 4년간 기존의 137배에 달하는 대출이 취급됐다는 점에서 CEO와 관련된 명백한 특혜대출이라고 금융감독원은 보고 있다.
비록 전임 회장과 관련된 일이라지만, 우리은행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은행은 올해 1~3월 관련 부당대출에 대해 1차 자체조사를 진행, 내용을 일찍 파악했음에도 문제가 된 직원들을 이달 뒤늦게 수사기관에 고소했다. 금감원 보고도 제때 이뤄지지 않았다. 부당대출을 막을 중간 통제장치뿐 아니라 사후관리 매뉴얼까지 부실했다는 의미다.
한 기업의 정점에 있는 인물이 본인의 지배력을 잘못 행사한 대가는 컸다. 잇단 금융사고로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기 위한 우리금융그룹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공교롭게도 우리금융은 손 전 회장 시절 각종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대규모 횡령 등 굵직한 금융사고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그때마다 그룹의 내부통제 시스템을 공고히 하겠다며 대대적인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CEO가 엮인 이번 부당대출 사고로 그 모든 사죄와 다짐들에 대한 진심을 의심하게끔 만들었다. 우리금융이 땅끝까지 떨어진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본인은 떠났지만 남겨진 사람들이 감당해야 할 짐의 무게는 상당할 듯하다. 본인을 믿고 따르던 임직원들에 대한 배신이 아닐 수 없다.
신뢰 회복을 위한 금융업권의 자정노력도 물거품 될 위기에 처했다. 금융사고에 대한 경영진별 책임을 명문화한 '책무구조도' 도입과 관련해 금융회사들은 최종 법률검토에 돌입, 조기 시행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열린 금융그룹별 경영전략회의에선 '내부통제 강화'가 핵심 목표로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또다시 신뢰를 잃어버린 상황에서 금융사고 재발 방지에 힘쓰겠단 금융회사의 약속은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있다.
금융지주사들의 기업가치 제고(밸류업) 계획에도 불똥이 튈까 우려된다. 최근 금융지주사들은 주주환원율 50% 달성, 자사주 매입·소각 확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밸류업 프로그램을 일제히 발표했다. 양호한 실적, 높은 배당률도 밸류업의 성공을 결정 짓는 중요한 요소지만, 금융사고를 통제해 안정적인 지배구조를 갖추는 게 밸류업을 위한 기본 과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아무리 좋은 실적을 낸다고 한들 사고가 끊이지 않는 기업을 믿고 자산을 맡길 투자자가 어디 있겠는가. 공교롭게도 우리은행의 이번 부당대출 사고가 처음 보도된 지난 11일 오전, 우리금융에선 임종룡 회장이 참석하는 '애널리스트 데이' 보도자료가 배포됐다. 이 자리에서 임 회장은 △보통주자본비율 12.5% 조기 달성 △주주환원율 50%까지 확대 등의 밸류업 방안을 공유했다. 밸류업을 위한 그룹의 전사적인 노력이 몇시간 만에 '부당대출'이란 불미스러운 일에 묻히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부당대출 사고 이후 임 회장은 다시 한번 믿어달라며 읍소했다. 금융사고 방지를 위해 내부통제는 물론 부당한 지시, 잘못된 업무처리 관행, 기업문화 등 조직 전반을 철저하게 개선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번 사고가 내부통제를 더 견고히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우리은행의 약속이 또한번의 공염불이 될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