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사 '작업중지권' 보장···재해발생 감소 효과 '톡톡'

삼성물산, 3년간 30만여 작업중지권 시행···"휴업재해율 매년 15%씩 감소" 중대재해 수준 아닌 일반 위험상황에도 쓰도록 권장···어플 등으로 접수 반면 공기·공사비 늘어 중소 건설사는 부담···초과근무·품질 저하 등 문제로 올해 열사병 산업재해 사망자 14명···"눈치보여 '폭염'으로 휴식 요청 못해"

2024-08-13     박소다 기자
서울의

[서울파이낸스 박소다 기자] 지난 2020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건설사들이 근로자에도 '작업중지권'을 부여하기 시작하면서 공사현장 내 안전사고가 줄어들고 있다. 다만, 공사기간이 늘어나는 만큼 공사비 부담이 커져 영세한 중소 건설사에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13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작업중지권은 공사현장에서 위험이 발생할 수 있는 경우 근로자가 현장의 작업 중단을 요청할 수 있는 제도다. 지난 2020년 1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명문화됐고,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의 도입과 맞물려 건설현장에 정착했다.

법 개정 4년차 현재 대형 건설사들은 근로자에게 작업중지권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 등에서 작업중지권 시행 횟수를 밝힌 △삼성물산 건설부문 △현대건설 △대우건설 △DL이앤씨 △HDC현대산업개발의 활용 현황을 보면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사용된 작업중지권은 총 40만699건에 달했다. 도입 초기 5개사의 작업중지권 행사 건수가 총 1만3000여건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30배 넘게 증가한 셈이다.

작업중지권 행사가 가장 활발한 곳은 삼성물산이다. 취재 결과 삼성물산은 지난 2021년 3월부터 근로자의 작업중지권을 전면 보장한 이후, 국내외 113개 현장에서 작업중지권 총 30만1355건이 시행됐다.

삼성물산 관계자는 "작업중지권이 실행되면서 실제 재해를 낮추는 효과가 있었는데, 휴업재해율(근로자가 1일 이상 휴업하는 재해 발생 비율)이 작업중지권 전면 보장 첫 해인 2021년부터 매년 약 15%씩 꾸준히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회사는 아울러 작업중지권 행사로 인해 발생된 공사기간 지연과 인력 추가 투입 등 협력업체 비용 증가에 대한 보상도 진행했다. 총 13개 업체, 391건에 대한 작업중지권 관련 비용을 정산 과정에 반영했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작업중지권 행사 건수가 2122건에 그쳤으나, 사용대상을 확대한 결과 올 상반기까지 7만5000건으로 크게 늘었다. 기존에는 중대재해 발생 가능성이 있는 경우만 허용했는데, 올해부턴 일반적 위험상황도 작업중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오프라인 서류를 통해 접수하던 불편함을 덜기 위해 애플리케이션 등 시스템을 통해 누구나 위험요인을 인지했을 경우 신청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DL이앤씨의 경우도 작업중지권을 포함한 현장 '안전신문고' 제도를 통해 재해발생이 줄었다. 안전신문고는 현장 곳곳에 부착된 QR코드로 접속하며 위험 신고, 안전조치 요청, 현장 안전 개선 의견 등 여러 기능을 포함한다. 꾸준한 홍보로 올 상반기에만 작업중지권을 포함해 총 1만1907건의 신고가 접수됐고, 이는 지난해 동기 대비 6배 이상 늘어났다.

DL이앤씨 관계자는 "신고 비율의 약 65%는 추락과 작업환경 미확보, 전도 위험에 관련된 것이다"라면서 "작업중지권이 활성화하며 지난해 동기 대비 올 상반기 부상재해가 40% 감소했고, 특히 낙상, 추락, 충돌·협착 관련 재해는 절반 가까이 감소하는 효과를 봤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대건설과 HDC현대산업개발이 제도 시행 후 각각 1만4045건, 3057건의 작업 중지 및 개선 요청을 접수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작업중지권 행사는 일부 대형 건설사에서만 가능한 일이며, 영세한 중소 건설사에겐 부담이 된다는 시선도 있다. 작업중지권이 행사되면 공사기간이 늘어나 공사비가 증가하고, 공정률 만회를 위해 초과근무·돌관공사 등 무리한 작업을 하다가 오히려 사고 발생률을 높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 사례인 삼성물산 작업중지권 시행 횟수로 단순 계산해 봤을 때 하루 평균 전국 삼성물산의 현장에서 270건의 작업중지권이 활용되며, 5분에 한 번꼴로 작업이 멈춘 셈이다. 대형 건설사니 감당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연속 공정 중단으로 인한 품질 저하와 남용 가능성 등의 문제도 있다.

더욱이 일반적으로 중소 건설사 현장에선 추락, 충돌 사고 등이 아닌 '폭염' 등 계절성 질환에 대해선 작업 중단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질병청 자료를 보면 지난달 부산의 한 건설 현장에서 60대 인부가 열사병으로 숨졌으며, 이를 포함해 올해 폭염에 따른 산업재해 사망자가 14명에 이르러 역대 최다다.

고용노동부는 체감온도 33도 이상 시 매시간 10분, 35도 이상 시 매시간 15분 휴식을 의무화하고 가장 더운 14시~17시엔 작업 중단을 시행하도록 했다. 그러나 건설노조가 지난달 건설 노동자 1575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체감온도 35도 이상일 때 옥외작업을 중지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 80.6%가 '중단 없이 일한다'고 답했다. '폭염으로 작업 중단을 요구한 적이 있는지' 물음에는 89.0%가 "요구한 적 없다"고 했고, 11%만 있다고 답했다.

한 중소건설 현장 근무자는 "현장에 에어콘이 나오는 휴게실이 있긴 하나 고층에서 작업하다 지층에 있는 휴게실까지 계단으로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게 더 힘들어 잘 사용하지 않게 된다"며 "또 더워서 일을 못하겠다고 하면 사업주가 '근태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일을 못 나오게 할 수 있어 휴식을 요구하지 못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