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은행장 인선 레이스 개시···내부통제 성적표 연임 가늠자되나
5대 시중은행 등 은행장 9명 연말 임기만료 탄탄한 성과는 '합격점'···부당대출·횡령 '발목'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국내 5대 은행을 비롯, 총 9명의 은행장들이 올해 말 임기가 만료되면서 은행권 인선 레이스에 업계의 촉각이 집중되고 있다. 올해는 횡령, 부당대출, 홍콩H지수 기초 주가연계증권(ELS) 등 은행권에서 굵직굵직한 금융사고가 다수 발생한 만큼 '내부통제 성적표'가 연임을 가를 주요 변수로 거론된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KB·하나·우리·NH농협금융지주는 이달 말까지 계열사대표이사후보추천위원회(대추위)나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를 열고 은행장 등 연말 임기만료 자회사 CEO들에 대한 선임 절차를 시작한다.
신한금융지주는 일찍이 지난 10일 자회사최고경영자후보추천위원회(자경위)를 열고 자회사 CEO들에 대한 승계절차에 돌입했다.
임기만료 1~2개월 전 승계절차를 시작하던 예년과 달리 3개월 전부터 관련 준비 작업에 돌입하는 것은 금융당국이 금융지주사들에 투명한 지배구조와 CEO 선임절차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금융당국이 마련한 '은행지주·은행의 지배구조에 관한 모범관행'에 따라 이사회는 지주 및 은행 CEO에 대한 경영승계절차를 최소 3개월 전부터 개시해야 한다. 은행장들의 임기가 올해 12월 말 종료되는 만큼 9월 말 전에는 승계절차를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올해 말 임기만료 은행장들 중에는 5대 시중은행장인 이재근(58) KB국민은행장, 정상혁(60) 신한은행장, 이승열(61) 하나은행장, 조병규(59) 우리은행장, 이석용(65) NH농협은행장도 포함된다.
이 중 이재근 행장은 2022년 1월부터 2년간 임기를 채운 뒤 지난해 말 1년의 임기를 추가로 받은 바 있어 올해 두 번째 연임 도전이다. 이 행장의 경우 탄탄한 실적을 바탕으로 은행을 안정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KB금융은 관례적으로 계열사 CEO들에게 '2+1년'의 임기를 부여하는데, 직전 허인(63) 행장이 안정적인 리더십을 바탕으로 '2+1+1년'의 3연임에 성공한 전례가 있어 이 행장의 3연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거론된다. 올해 국민은행 최대 리스크였던 홍콩ELS 사태도 비교적 빠르게 매듭지으며 조직 안정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다만, 이 행장이 윤종규 전 지주 회장 체제에서 선임됐다는 점은 변수다. 지난해 11월 양종희(63) 회장 취임 직후 단행된 은행장 인사에서 이 행장은 연임에 성공했다. 그러나 양 회장 취임과 이 행장 연임 간 기간이 2주가 채 안된다는 점에서 양 회장 의중을 은행장 인사에 충분히 담기엔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사실상 올해 인사에서 양 회장 '색깔내기'가 본격화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밖에 정상혁 행장과 이승열 행장, 조병규 행장, 이석용 행장 등은 모두 초임이다. 은행장 2+1년 임기 관례와 양호한 실적만 보면 모두 연임에 무리가 없는 수준이지만 우리은행, 농협은행 등은 잇따른 금융사고가 발목을 잡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우리은행을 이끌어온 조병규 행장은 손태승 전 지주 회장 친인척 관련 부당대출 사고로 연임에 빨간불이 켜졌다. 지난달 초 금융감독원은 우리은행에서 손 전 회장과 관련한 350억원 규모의 부당대출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해당 사고를 인지한 직후 당국에 즉각 보고하지 않은 현 경영진에 대해 책임론이 일었다. 올해 6월에는 180억원대 규모의 횡령사고도 발생, 내부통제 이슈가 끊이지 않았다.
농협은행에서도 부당대출 배임 사고가 계속되면서 내부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올해 3월엔 109억원, 5월 64억원(2건)의 배임사고가 발생한 데 이어 8월에는 117억원 규모의 횡령 사고가 드러났다.
계열사 CEO 인사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강호동 농협중앙회장도 지난 5월 "중대 금융사고가 발생한 계열사 대표이사의 연임을 제한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이 행장의 연임이 불투명하다는 시각이다. 올해 3월 취임한 강호동 회장이 인사에 대규모 변화를 줄 것이란 관측도 있다. 농협에선 신임 중앙회장 취임 직후 계열사 CEO들을 대거 물갈이하는 일이 관행처럼 이뤄져왔다. 여기에 농협의 경우 다른 은행들과 달리 연임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도 부담이다.
안정적인 성과를 낸 정상혁 행장은 무난하게 연임에 성공할 것이란 게 중론이다. 신한은행은 올해 2조535억원의 순이익을 기록, 시중은행 중 유일하게 2조 클럽에 입성했다. 책임경영을 강조해온 진옥동(63) 지주 회장의 의중에 따라 핵심 계열사에 대한 리더십 변화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성과 측면에서는 이승열 행장도 연임에 손색이 없다는 평가지만, 내년 3월 임기를 마치는 함영주(68) 지주 회장의 거취에 맞춰 변동 가능성도 거론된다. 성과만 보면 이 행장 체제에서 하나은행은 공격적인 기업금융 영업을 기반으로 은행들 가운데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이 금융지주 회장이나 핵심 계열사 CEO들의 장기집권에 꾸준히 부정적인 기조를 보였기 때문에 인정할 만한 눈에 띄는 성과가 있지 않는 한 연임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로 큰 사고가 있던 곳이라면 CEO 교체 수순은 당연한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5대 은행 외 강신숙(63) Sh수협은행장과 황병우(57) iM뱅크 행장(DGB금융지주 회장 겸직), 백종일(62) 전북은행장, 고병일(58) 광주은행장도 올해 임기가 종료된다.
이 중 강신숙 행장은 오는 11월 17일 임기가 만료된다. 수협은행 행추위는 '행장 공개모집'을 통해 선발된 6명의 후보군을 대상으로 오는 23일 면접을 시행하고, 24일 단독 후보를 결정할 계획이다. 후보군에는 현 강 행장도 포함돼 있다.
강 행장은 수협은행 최초 여성 행장으로 재임기간 포트폴리오 체질개선을 통한 역대 최고 실적 달성이라는 성과를 냈다. 다만, 행추위 위원 5명 가운데 4명의 동의를 얻어야 연임에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특히, 수협중앙회장의 의사가 수협은행장 선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강 행장의 경우 임준택 전 회장 시절 선임된 인사인 만큼 현 노동진 회장 체제에서는 연임 여부를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