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강도 혁신' 외쳤던 LH···사라지지 않는 '전관 특혜'
붕괴사고로 지난해 징계받은 전관업체, 올해 LH일감 또 따내 '소송 시 영업정지 처분 효력 중지' 제도적 허점 이용해 입찰 매입임대주택 위탁관리 용역 계약도 2개 전관업체가 '싹쓸이' 비리 근절 위한 혁신안 2차례 발표에도 결과는 제자리 걸음
[서울파이낸스 박소다 기자] 지난해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로 수면 위로 떠오른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비리가 올해 국정감사에서 또다시 확인됐다. 지난해 적발돼 징계받은 전관업체들이 여전히 LH와 수백억원 규모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사고 이후에도 LH의 내부 혁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16일 국정감사 기간 여·야 의원실이 LH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철근누락으로 제재 처분 받고도 올해 LH 사업을 낙찰받은 전관업체는 8곳이다. 한 업체가 6건을 계약 체결하는 등 동일 업체가 여러 사업을 낙찰받은 경우도 빈번했다.
전관업체란 LH 퇴직자가 차리거나 이들을 영입한 사업체다. 이 같은 업체가 올해 수주한 21개 사업의 계약금액은 총 814억6779만원으로, 특히 LH 아파트 설계 15건(발주액 630억원), 감리 8건(489억원)에 대한 입찰 23건 중 65%인 15건이 전관업체에게 돌아갔다.
지난해 LH는 인천 검단 아파트 주차장 붕괴사고와 관련 사태의 책임주체로 강한 질타를 받았었다. 부실시공 조사 과정에서 아파트 설계나 공사를 감독하는 감리를 LH 출신 전관이 포진한 업체가 대거 맡은 사실이 드러나서다.
이에 국토교통부와 LH는 전관 카르텔을 끊겠다며 지난해 12월 'LH 혁신 및 건설 카르텔 혁파 방안'을 발표했다. 안전 문제를 유발한 업체는 일정 기간 LH 사업을 수주하지 못하게 하는 '원 스트라이크 아웃제'도 혁신안에 포함됐다. 또 LH가 짓는 공공주택의 설계·시공·감리는 전관비리 원천차단을 위해 올해 4월부터 LH가 아닌 조달청이 입찰로 선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에도 또다시 전관비리가 발생했고, 다수는 지난해 붕괴사고 때 참여해 벌점까지 부과받은 업체였다. 이들 전관업체들은 법적 소송을 걸면 판결 시까지 지자체의 영업정지 처분 효력이 중지된다는 제도적 허점을 이용해 입찰에 참여해 일감을 따냈다. 방지 대책의 실효성에 의문이 드는 부분이다.
조달청 관계자는 "법원에 소송을 내면 벌점 효력이 정지돼 입찰 심사 때 이를 반영할 수 없었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국감에선 매입임대주택 관리용역 업체의 전관 특혜 의혹마저 제기됐다. 매입임대사업은 도심 내 다가구 등 기존주택을 LH가 매입해 서민에게 제공하는 사업으로, 전국 54개 권역에서 전문 위탁기업들이 사업을 관리한다.
LH는 3년마다 매입임대주택 위탁관리 용역 계약을 진행하는데 2개 특정업체가 싹쓸이했다. 2022년부터 올해까지 이 두 업체는 54건 용역 중 42건(80%·1009억5000만원)을 따냈다. 한 업체에는 2급 이상의 LH 퇴직자가 1명 포함 총 4명이 전관이 재직 중이고, 다른 업체에는 2급 이상 3명 등 8명이 근무 중이었다. 또 제안서 평가 단계에서 전관업체가 단독 적격 판정을 받거나, 전관이 아닌 2위 업체에 최하점을 주는 수법도 확인됐다.
이에 대해 이한준 LH 사장은 국감에서 "건설, 인허가 쪽 전관에 관심을 가지느라 여기(매입임대주택)까지 있는 줄 몰랐는데 저도 굉장히 놀랐다"며 "확실하게 정리하겠다"고 해명했다.
LH는 올해 말 또 1500억원대의 매입임대주택 위탁계약을 앞두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LH의 비리가 얽힌 사업들이 공공주택 등 서민의 삶과 관련이 있어서다. 즉, 해당 비리가 고스란히 서민에게 피해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 자격이 미흡한데도 전관업체란 이유로 일감을 몰아주면 부실시공 발생 확률이 높아진다. 지난 5년의 공동주택 하자 접수 현황만 봐도 민간 건설사의 하자 의심 접수는 채 1만건이 되지 않는 반면, LH아파트에서 발생한 하자 건수는 100만건이 넘는다. 매입임대주택 역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과 서민 전·월세 안정 지원을 위한 사업이다.
앞서 LH는 2021년 초 불거진 직원들의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 이후 신뢰 회복을 위한 '내부 혁신안'을 발표한 바 있다. 이한준 사장도 2022년 11월 취임 뒤 같은 해 12월 투명성·공정성, 경영 효율성, 본연의 역할 수행 등 3대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LH 혁신계획안'을 직접 발표했다. 그러나 비리 근절을 위한 다양한 혁신안의 발표에도, 결과는 제자리걸음에 그쳤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내부에선 주택 공급, 부실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 매입, 국가첨단산업단지 조성 사업 등 대규모 비용과 인력이 투입되는 사업을 여럿 맡은 LH가 재무·인력·시간적 여유가 없는 상황이라 조직 개편 등 '내부 혁신'이 사실상 힘들다는 의견도 나온다.
LH 관계자는 "이번 전관업체 사안의 경우 법령상 한계로 배제할 방법이 없었다"고 설명하면서도 "안전한 주택 건설을 위해 설계·감리 등 업체 선정 절차가 공정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제도를 개선할 예정이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매입임대주택 관리 계약 관련해서도 2급 이상 퇴직자 영입 업체엔 벌점을 부여하는 등 제도 개선 고려 중"이라며 "직원의 비리행위에 대해 엄중하게 관리·감독해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