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4대은행 LTV 담합' 재심사 결정···해 넘길듯

이달 두차례 전원회의 열었지만 '신중모드'

2024-11-21     김현경 기자
안병훈

[서울파이낸스 김현경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부동산 담보인정비율(LTV) '정보교환' 담합 사건에 대해 재심사를 결정했다.

이르면 이달 중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됐으나, 이번 사건이 2020년 공정거래법 개정 후 신설된 '정보교환' 담합의 첫 적용 사례인 만큼 보다 신중하게 판단하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공정위는 '4개 시중은행의 부당한 공동행위에 대한 건'에 대해 재심사명령을 결정했다고 21일 밝혔다. 앞서 이달 13일과 20일 두 차례에 걸쳐 전원회의를 열고 4대 은행의 LTV 담합 여부를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이다.

공정위는 "심사관과 피심인들 주장과 관련한 사실관계 추가 확인 등을 위해 재심사 명령을 결정했다"며 "심사관은 본건에 대한 추가 사실을 확인한 후 가능한 신속하게 위원회에 안건을 재상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정위는 4대 은행이 7500여개 LTV 정보를 사전에 공유해 대출한도를 제한하고 시장경쟁을 막았다고 보고 있다. LTV는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줄 때 대출 가능한 한도를 나타내는 비율이다. 은행은 아파트·토지·공장 등 부동산과 250개 시·군·구별로 LTV를 다르게 매기는데, 이 과정에서 사전에 정보를 공유한 것을 두고 담합 소지가 있다고 본 것이다.

대출을 받으려는 사람은 한도를 많이 받기 위해 LTV가 가장 높은 은행을 찾아가기 마련인데, 담합으로 4대 은행의 LTV 수준이 비슷하게 맞춰지면서 경쟁을 제한했다는 설명이다. 또 LTV가 낮게 설정되면서 주택 구입을 위해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 신용대출 등 추가 대출을 받도록 유도하는 효과로 이어졌고, 결과적으로 대출금리도 전반적으로 끌어올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은행들은 LTV 정보 교환이 리스크 관리를 위한 것으로 시장 경쟁을 제한하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은행업은 금융소비자들의 돈으로 영업을 하는 특성상 건전성 등 리스크관리 규제가 엄격하게 적용된다. 정보 교환을 통해 LTV를 오히려 낮췄기 때문에 이익을 보지 않았다고도 주장한다. LTV가 낮아지면 은행이 내줄 수 있는 대출한도가 축소되고 결과적으로 이자도 줄어들게 된다.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가운데 이달 열린 전원회의에서 판사 역할을 하는 공정위 위원들은 양측 주장을 들었다. 통상 전원회의 후 공정위 위원들은 합의를 통해 제재 여부를 판단하고 그 결과를 1주일 후 발표해왔다. 그러나 결과 발표 대신 재심사 명령이 내려지면서 이번 사건에 대한 제재 여부와 수위 등은 내년에나 나올 것으로 관측된다.

공정위가 4대 은행에 제재를 확정하면, 지난 2020년 개정된 공정거래법에 따른 '정보교환 담합' 첫 제재 사례가 된다. 업계에서는 공정위 제재로 최대 수천억원의 과징금이 나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안병훈 공정위 심판관리관은 이날 백브리핑에서 "(전원회의에서) 새롭게 주장하는 것들이 있어서 확인한 후 다시 한번 결정을 심의해보자는 측면"이라며 "기존 심사에 절차적 하자가 있다거나 객관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안 심판관리관은 "재심사가 아주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라며 "최근 심의가 마무리된 '삼표 부당지원' 사건도 재심사 후 재상정해 제재가 이뤄졌다"고 부연했다. 삼표 부당지원 혐의의 경우 재심사 명령 이후 5개월 만에 제재 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공정위는 신속하게 재심사를 진행한다는 계획이지만 일각에서는 연말 내각 개편, 후속 부처 인사 등으로 재심의 결과가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은행권은 주장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을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는 측면에서 한시름 덜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