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마무리 서둘러 경제 되살릴 때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금통위원회에서 금리 동결을 결정한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 인상적이다. 물가걱정은 있지만 고환율 문제가 심각해 금리동결을 결정했다는 설명에 미국의 강달러 추세로 모든 나라가 환율인상을 겪고 있지 않느냐는 기자 질문에 그 문제 외에도 한국은 작금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한 추가적 인상분이 30원 이상 된다고 본다는 답을 한 것이다.
계엄직후 한때 1486원까지 오르고 탄핵에 반하는 정치적 결정이 나올 때마다 요동치던 환율은 윤석열 대통령 체포 이후 그나마 다소 안정세를 보이지만 계엄 이후 40원이나 오른 상태로 한국 경제에 엄청난 부담이 되고 있다. 한 경제전문가는 환율이 10원 오르면 한국전력의 손실액이 2000억원에 이른다는 주장을 했을 정도이니 국가 전체적인 손실액으로는 천문학적 손실이 발생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메이저언론들은 계엄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300조~500조 정도로 추산하는 보도를 내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현재의 불안한 정치상황이 빠른 시일 내에 말끔히 해소되지 못하면 실제 손실액은 1000조원에 달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 중 환율 방어비용이 천문학적 수준을 보이고 있어서 그 후유증이 앞으로 얼마나 갈지도 염려되는 상항이다.
계엄 직후 기획재정부장관을 필두로 소위 금융의 F4들이 모여 하룻밤 사이에 84원까지도 치솟던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한 대책으로 무제한 유동성 공급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나마 그 발표로 40원 정도가 가라앉아 잠시 안정기미를 보이던 환율은 국회에서 1차 탄핵안 처리가 무산되면서 다시 출렁였다가 2차에서 탄핵안이 통과되자 다시 안정되는 등 정세에 따라 지속적으로 흔들렸다.
문제는 유동성 확대방안으로 금융기관 RP의 무제한 매입이 시작되며 풀린 자금 규모가 경악할 수준이라는 것이다. 12월 한 달 동안 무려 47조원이 환율방어용으로 풀렸다.
이는 코로나로 전세계 경제가 사실상 셧다운 상태였던 2020년 1년간 풀린 유동성 규모가 42조원이었다는 것을 감안할 때 한달만에 47조원의 자금이 풀렸다는 것은 정치상황이 호전되더라도 그 후유증이 오래 갈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통상적으로는 유동성 규모가 연간 1조~2조원 안팎이고 박근혜 탄핵이 이루어졌던 2017년처럼 특별한 변수가 발생한 해에도 연간 6조원 정도에 머물렀다. 계엄 이후 이달 16일까지의 환율 방어비용은 총 62조원에 달하며 이 부담은 현재의 정국이 장기화할수록 불어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돈이 풀리면 물가가 크게 올라야하지만 현재는 환율상승으로 소비여력이 더 줄어듦에 따라 수입물자 비중이 큰 상품들을 제외하면 물가도 오르지 않고 있다. 경제구조적 왜곡현상은 그밖에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풀린 돈으로 인해 당장은 환율불안을 어느 정도 해소한 듯 보이지만 이는 역으로 원화가치의 추락을 불러오는 요인이 돼 환율을 다시 끌어올릴 위험이 커졌다. 이는 일본이 잃어버린 30년의 고리를 끊겠다고 무한으로 유동성을 늘린 아베노믹스로 인해 정부부채를 과도하게 늘린 결과 대내외적인 경제상황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점차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을 떠올리게 된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달러는 더 강세를 이어갈 요인들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이 처한 국내적 상황으로 인한 부담까지 더해지며 환율상승 압력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미국의 고용시장이 예상치를 웃도는 비농업 신규 고용인원 수가 256만명에 달하는 등 호조를 보이며 실업률도 0.1%p 내려가고 금리인하도 한차례 정도 전망되고 있다.
지금 전세계에서 미국만 호경기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이런 미국의 상황은 가뜩이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증대되어 요동치는 환율 장세에 더 큰 부담을 안겨준다.
환율 문제만으로도 버겁지만 취업자 수의 감소는 한국 경제에 더 큰 타격을 가할 주요 변수다. 11월까지는 소폭이지만 꾸준히 늘던 취업자 수가 12월에는 오히려 5만2000명이나 줄어들었다.
환율 방어를 위해 막대하게 풀린 돈이 시중에 흘러들었지만 물가에는 큰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돈은 다 어디로 간 것인가. 소득 상위 10%와 하위 10%의 소득격차가 연간 2억원이 넘는 나라에서 그 돈은 결국 부유층에게 일방향으로 흘러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그 부유층들이 다시 달러를 사들이는 빌미를 제공하는 악순환의 시발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하루라도 빨리 탄핵정국을 마무리 지어야 할 당위가 여기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