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장수가 재앙이 되어간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사회적 복지비용을 줄이기 위해 노인 연령을 기존 65세에서 70세로 높이려는 논의가 무르익고 있다. 그러나 일터에서 60대, 소위 말하는 젊은 노인들이 설 자리는 거의 없다.
일자리에서는 일찍 밀려나지만 사회복지의 혜택은 받을 수 없는 복지 사각지대가 더 넓어진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은퇴 이전에 충분히 노후대비를 할 시간이 주어지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연령은 계속 늦어지고 있다. 대학교육이 보편화하면서 취업연령은 70~80년대에 비해 평균적으로 4년 정도 늦게 출발해 정년퇴직 문화가 후퇴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 조기퇴직이 흔해지면서 실제 노동기간은 대폭 짧아지고 있다.
요즘 불황의 그림자가 짙어지며 조기퇴직이 강제되는 직장들이 늘고 있다. 가장 안정적인 일자리로 간주됐던 금융기관에서도 명예퇴직 바람이 불고 있다. 그나마 명예퇴직을 할 수 있는 직장이라면 다행이지만 대개는 그저 정해진 퇴직금 받고 밀려나는 조기퇴직을 당하는 경우들이 일반적이다.
그나마 정규직들은 어지간한 나이대까지 일을 할 수 있지만 경영압박이 커진 요즘 같은 시절엔 아예 대기업들도 신규채용을 하지 않고 간혹 신규채용 하는 곳들의 태반은 계약직이 주를 이룬다. 문제는 계약직 2년이면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노동자들을 배려한 법이 거꾸로 노동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직이 빈번해진 요즘의 풍조이긴 하지만 젊은 세대는 2년마다 직장을 옮겨 다니지 않을 수 없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다.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기업 탓만 할 수도 없다. 워낙 경영환경이 열악해진 대개의 업종에서 이는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렇게 전문성도 쌓을 틈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던 노동자들은 정규직들보다 훨씬 이른 나이에 직장생활을 접을 수밖에 없다. 이는 노동자들의 개인적 생활안정을 위협할 뿐만 아니라 기업 입장에서도 적절한 노동생산성을 확보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결국 대학 졸업하고 취업준비기간까지 거쳐 보통 여성 25~26세, 군복무를 해야 하는 남성은 그보다 최소 1년 6개월은 더 늦게 취업시장에 발을 딛는다. 그러고도 조기퇴직까지 당하면 실제 일하는 기간은 20~25년 정도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이 기간 동안에 일생에서 남은 근 50년의 시간을 살아갈 경제적 대책을 마련할 수는 없다. 매우 특별한 이들이 아니라면.
인류사에서 장수는 오랜 꿈이었다. 종교가 지배하던 시대에 장수하는 이들은 신의 사랑을 받은 자들로 간주됐다. 과학과 의학의 발전으로 그 오랜 인류의 꿈이 실현돼 평균수명은 대폭 늘어났다.
경험의 전승이 중요했던 농경사회에서는 노인의 경험이 사회적 유용성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오랜 시간 경험을 축적한 노인은 충분히 존중받을 수 있었다. 젊은 세대는 노인들의 경험을 전수함으로써 더 지혜로워지고 따라서 노인을 공경하는 것이 사회적 실익이 있는 일이 됐다.
도덕적, 철학적 담론 이전에 이런 유용성이 있기에 안정적인 노년의 삶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산업화시대로 들어선 이후 빠른 산업의 변화로 인해 노인의 경험이 갖는 유용성은 사라지고 종종 불필요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인구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현재 한국의 상황을 감안하면 노인연령을 끌어올리는 것이 불가피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그 이전에 자발적으로든 강제적으로든 은퇴한 이들이 노령복지혜택을 받기 전까지 생존의 위협을 받지 않을 방안마련에 국가와 사회가 깊은 고민을 해야만 한다.
오래 사는 것이 재앙이고 저주로 여겨지는 사회는 그 자체로 지옥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체력은 떨어지지만 연륜이 축적된 고연령 노동력을 소화할 사회적 기반 마련도 없이 직장에서도 밀어내고 복지대상에서도 탈락시키는 것은 정치의 방임행위이다.
일자리를 얻지 못해 노년층에 적대감을 드러내는 젊은이들이나 줄줄이 폐업이 이어지는 자영업으로 은퇴자들을 몰아넣는 짓을 직업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되풀이하며 국고낭비 하는 것을 정책이라고 밀어붙이는 일도 더는 멈추고 실효성있는 대책에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
지금 같은 어수선한 정국에 어느 세월에 될까 싶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