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만에 'LH 매입' 카드 꺼냈는데···"효과 제한적"

지방 건설 살리기 vs 건설사 악성 재고 떠안기  "품질·입지·가격 등 면밀하고 엄격한 기준 설정해야" "실효성 위해선 취득·양도세 등 수요 진작책도 필요"

2025-02-20     오세정 기자
부산

[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15년 만에 지방의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을 직접 사들이는 것은 지방의 악성 미분양 주택의 급증 현상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다만, 주택 매입 시 가격과 품질·입지 등을 다각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품질·입지·분양가 문제로 시장에서 실패한 주택을 정부 재원으로 매입하는 것은 자칫 건설사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전문가들은 정책 효과를 내기 위해선 세제 개편이나 대출 규제 완화 등 적극적인 수요 진작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발표한 매입 물량은 약 3000가구로, 지난해 12월 기준 지방의 전체 준공 후 미분양 주택(1만7200가구)의 17.4% 수준이다. 매입 이후에는 '든든전세주택' 제도를 활용한다. 든든전세주택은 시세의 90% 전세금으로 최대 8년간 거주할 수 있는 임대주택으로, 일정 기간이 도래하면 분양 전환을 결정할 수 있다. LH의 지방 악성 미분양 아파트 매입은 기존 예산을 활용하므로 추가 재정 투입은 없다. 국토부는 수요에 따라 필요하다면 관계 부처와 협의해 예산을 추가 확보할 방침이다.

LH가 악성 미분양 아파트 직접 매입에 나서는 것은 지난 2010년 이후 15년 만이다. LH는 2008∼2010년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 7058가구를 매입했다. 당시 매입가는 분양가의 70% 이하였다.

LH가 지방 악성 미분양 주택 문제의 해결사로 나선 것을 지방 경기를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결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건설업 자체가 분양 사업에 매몰된 구조적 한계에 따라 미분양 문제가 발생하면 건설사는 물론, 하도급 업체들까지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면서 "준공 후 미분양이 더 늘어난다고 했을 때 시장에 주는 시그널이 부정적이라고 판단함에 따라 지방 미분양 아파트를 중심으로 이용자들의 선호를 판단해 매입을 추진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LH가 지방 악성 미분양 주택 매입 시 품질·입지·분양가 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품질·입지·분양가 측면에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 LH는 시장에서 실패한 주택을 떠안게 되는 상황이 돼 충분한 임대 수요를 확보할 수 없게 된다. 또 민간 건설사의 이익만 보장해 준다는 점에서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원론적으로 공공의 미분양 매입을 바람직한 것으로 평가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건설사 등이 다른 미분양 아파트의 품질은 균일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미분양 아파트를 공공이 매입해서 임대한다고 해도 입지와 가격 등에 따라 임대 수요가 다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매입 가격과 품질 등의 기준을 엄격하게 설정해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연구위원은 "공공의 미분양 아파트 매입은 면밀한 기준을 적용해서 시도할 필요가 있고, 동시에 품질·입지에 대한 기준을 마련해 미분양 아파트에 과도한 혜택이 되지 않도록 선별적으로 매입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한국부동산경영학회 회장)도 "해당 건설업체 쪽에서는 도움이 될 것이나 매입을 하더라도 혈세가 투입돼서는 절대 안 된다"며 "임대 수요가 있는 곳에 매입해야 하고 매입 가격을 적정하게 설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공공자금을 투입해서 건설업계 살리기는 한계가 있다.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신중하게 고려해 매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번 LH의 지방 악성 미분양 주택 매입이 LH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주택 공급 확대로 인해 인력이 부족함에 따라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을 축소해 가용 인력을 확대하고 나선 가운데 추가적인 업무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LH 관계자는 "물량이 신규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기축 예산과 인력 안에서 든든전세로 전환하는 것이기 때문에 추가적인 물량이 늘어나거나 부담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면서 "15년 만에 미분양 매입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존 업무가 변경되는 부분은 있겠지만 편성된 예산과 인력이 이미 갖춰져 있어 추가적인 부담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정책 효과를 내기 위해선 취득세와 양도세 등 수요자 주택 마련 부담을 줄일 방안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주택자뿐 아니라 다주택자도 주택을 매입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의미다. 수요 진작책이 담기지 않은 만큼 시장 활성화로 이어지긴 한계가 있다고 봤다.

김 부연구위원은 "과거부터 지방 미분양이 해소될 때 세금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주택자들이 시장에 나서야 하는데 지금 세제 방향은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이 과하게 매겨진 측면이 있다"면서 "현재 무주택자들이 처음 주택을 구매하면서 지방 미분양 아파트를 선택하기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주택을 살 요인을 병행해서 정책이 나왔으면 좋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일반 소비자들이 살아나야 시장이 살아난다. 취득세, 양도소득세 감면, 대출 규제 완화 등이 이뤄져야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며 "정부에서도 여소야대 국면 속에 최대한 노력을 했지만 수요에 대한 진작책이 부족해 시장 활성화는 한계가 있다"고 봤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지방 준공 후 미분양 주택 구입 시 디딤돌 대출 우대금리 신설이나 지방 3단계 스트레스 DSR 완화 등도 좋지만, 향후 세제(양도세 5년 감면 조특법, 취득세 완화 등)나 지방 생활 인프라 등 시장이 생각하는 그 이상을 내놓아야 시장이 반응할 거라고 판단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