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속없는 '덩치키우기' 이제 그만!
실속없는 '덩치키우기' 이제 그만!
  • 홍승희
  • 승인 2004.12.1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린이나 청소년기까지는 또래 사이에 다툼이 일거나 뭔가 갈등이 있을 때 일단 덩치 큰 쪽이 기선을 잡기에 유리하다.
물론 어른들 사이에서도 연배가 비슷하거나 사회적 신분 계층이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아무래도 덩치 큰 것이 유리할 때가 많다.
하지만 어른들 사이에서는 내용이 채워지지 않은 채 덩치만 크다는 것으로는 그다지 대접받지는 못한다.
그 보다는 자신감, 논리적 정당성 등 여러 사회적 심리적 요소들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격심하게 구조조정을 겪으며 몸집 부풀리기에 박차를 가해온 금융권을 보고 있노라면 상당히 민망한 비유이긴 하지만 청소년기에 괜스레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실속없는 덩치들을 바라보는 느낌을 감추기 어렵다. 분명 덩치는 커졌는데 그 내용이 제대로 채워지고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요즘 은행들 사이에서 리딩뱅크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 리딩뱅크 경쟁이 또 실속없는 덩치 경쟁으로 치닫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물론 덩치도 웬만큼 커야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을 터이지만 덩치로만 한몫하려다가는 국내 시장 싸움에서 다 물리치고 나니 나라 밖에서 밀고들어오는 새로운 경쟁자에게 초장부터 밀리는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 위험도 있다.

덩치는 이제 그만하면 충분한 경쟁력을 가질만큼 되지 않았나 싶다. 빅3니, 빅5니 하는 대형은행들 가운데서도 제일 큰 덩치를 자랑하는 국민은행의 경우 강정원 행장이 밝힌 바로는 자산규모 210조원에 고객 2천400만명이라 한다. 한국의 국가 경제규모와 비교해서도 1개 은행의 규모로는 결코 부족하지 않다. 국제경쟁력을 말하기에도 현단계에서 크게 밀릴 수준은 아니지 싶다.

그런 차원에서 이제는 내용이 중요한 시점이 되지 않았나 싶다. 우리는 흔히 나이에 걸맞게 덩치는 커졌으나 하는 짓이 짓어리면 철 좀 들라고 핀잔을 준다. 나이에 어울리게 덩치도 자라야 하지만 그에 걸맞게 행위도 성숙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다.

한국의 은행들은 너나없이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막대한 공적자금을 수혈받았다. 당연히 그에 걸맞는 국민경제 회생의 몫을 감당해야 한다. 그것이 은행이 진정 한국경제의 리딩그룹이 되는 길이다. 또래경쟁하듯 은행끼리 리딩뱅크 경쟁에 열올릴게 아니라 경제를 견인하는 금융산업의 리더로서 올바른 위상을 정립하는 데 관심을 쏟는 것이 더 바람직한 자세이고 신뢰를 높이는 길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은행은 수익성을 중히 여겨야 할 주식회사다. 주주 이익을 도외시한다면 그 또한 옳다 할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의 은행과 은행 주주들은 남의 나라가 이렇더라고 자신들의 입장을 단순비교할 수 없는 처지다. 그 주주들 역시 은행에 투입된 만큼의 공적자금의 수혜를 받은 셈이기 때문이다.
공적자금 투입없이 은행이 붕괴됐다면 휴지조각이 됐어야 마땅할 주식에 가치를 부여해 준 것은 바로 국민의 돈인 공적자금이었다.
은행 주주들에게는 오직 자신들만의 수익실현을 요구하는 것이 합당한 태도가 될 수 없다.
뭐, 그 때 그 주주 가운데 얼마나 남아 있겠냐는 철없는 소리는 하지말자. 그 혜택의 여파는 앞으로도 장기간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행여 공적자금 받을 상황에 몰린 것조차 누구 탓하고 싶은 것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아직 철들기 너무 멀었다. 관치를 뒤돌아서서 비난하면서도 앞에서는 논리적 반박 한번 제대로 않고 앞장서 받아들인 책임을 그 누구에게라도 돌리려 한다면 스스로를 너무 비굴하게 깍아내리는 짓일 뿐이다. 결코 철 든 어른이 할 짓이 아닌 것이다.

지금도 보면 어디 괜찮은 여신 대상이 있다 싶으면 각 은행이 경쟁적으로 몰려가 무더기 대출을 해주고 또 일시에 상황 바뀌었다고 앞다퉈 회수해 한 업종을 떼도산으로 몰아가는 게 우리 은행들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나. 스스로 신용평가 능력을 자신하지 못해 여전히 부동산 담보 끌어안고 절절매며 부동산 경기 등락이 있을 때마다 일희일비하지 않는다고 자신할 수 있나.

그런 점에서 아직 내용적으로는 갈길이 먼 은행들이 덩치만 내세우는 리딩뱅크 경쟁을 벌이는 모습을 지켜보기가 솔직히 좀 부담스럽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