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빛과 그림자
지진, 빛과 그림자
  • 홍승희
  • 승인 2005.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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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말 남아시아를 초토화시킨 엄청난 지진해일 피해를 보며 그간 인류가 이룩한 과학문명이 참으로 초라하게 느껴진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조차 한없이 오만해진 인류가 모처럼 자기성찰을 할 기회를 얻었지만 과연 얼마나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이번 참사의 1차적 원인은 수마트라 섬 주변을 진앙지로 하는 리히터규모 9.0이라는 유례를 찾기 힘든 강력한 지진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진의 강력함보다 그 지진의 여파로 발생한 해일이 피해를 수십, 수백배 이상 증폭시켰다.
지진은 인류 역사 이래 늘 문명을 조롱하듯 반복적으로 참담한 피해를 안겨주곤 했다. 그러나 그 지진이 꼭 인류에게 있어서 부정적으로만 작용한 것은 아니다. 인류의 주요 문명은 대개 세계 주요 지진대를 중심으로 발생되고 발전한 특징을 보여준다. 수메르 문명이 그렇고 마야`잉카 문명이 또 그러하며 이집트, 그리스, 로마 문명도 그렇지만 은허문명을 이룩한 동북아 역시 지진에서 자유로운 지역이 아니다.
이처럼 초기 문명이 지진대를 중심으로 발전한 것은 빙하기를 거치며 생존한 인류가 상대적으로 온난한 지진대역에서 새롭게 문명을 일구어낸데 그 원인이 있지 않나 싶다. 지진대는 빙하기를 지나는 동안 인류 멸절을 방지하는 역할을 감당해온 셈이다.
또 지진 그 자체로부터 보다 많은 인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다양한 기술도 발전해왔다. 그 기술 발달이 비단 과학분야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감당하기 힘든 자연재해 앞에서 인류 공생을 위한 정치`사회적 기술들 역시 함께 발전하며 문명 발달의 터전이 됐다.
그런 지진이지만 그 발생원인에 대해 인류는 아직 확실한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다. 지구과학의 최신 이론으로 이번 지진을 통해 폭넓게 대중화된 것이 소위 판이론이다. 지구상의 지각층이 몇 개의 판으로 구성돼 있고 이 판은 지구핵을 감싸고 있는 젤리같은 플라즈마 층위의 위로 서서히 움직이다 간혹 판과 판이 부딪치며 지진을 발생시킨다는 것이 판이론의 핵심 요체다. 그래서 판과 판의 경계 지점이 주로 지진을 발생시키게 되고 대개의 경우 지진은 늘 발생하는 지역에서 거푸 발생하는 특징을 보인다.
이 이론을 보며 지진을 발생시키는 지구의 다소 불안정한 구조 자체가 가지는 유용성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지구핵이라는 불덩이를 감싸 안은 채 거대한 지각을 받치고 있는 중간 층위가 만약 단단하고 빈틈없는 껍질 모양으로 돼 있다면 지구는 끊임없이 폭발하는 별 이상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지구의 초기는 그러했을 터이고 아직도 가끔 있는 화산폭발이 일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구가 그같은 지각을 뚫는 폭발이 멎고 지금같은 구조로 안정되고 나서 비로소 그 위에 생명이 자라고 인류가 역사를 이루어가게 되었다.
거꾸로 지구핵이 딱딱한 지각을 더 이상 위협하지 않는 상태가 된다면 지구는 서서히 죽어가는 별이 되어 더 이상 생명을 품어 기를 수는 없을 터이다. 태양열이 지구 위로 내려 쪼여도 지구 자체가 지닌 온기가 없다면 지구는 차츰 얼어갈 것이다.
이 시점에 새삼 지구과학의 상식을 더듬어보는 이유는 인간 사회의 모든 지혜가 결국은 자연의 법칙에서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사회는 아직도 정치`경제 등 제 분야에서 이념이라는 역사의 각질을 끌어안고 다투는 모양을 본다. 그러나 그 유연성을 잃은 이념의 다툼은 애초 이념을 탄생시킨 역사적 맥락조차 무위로 돌리며 단지 이미 지닌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휘둘러질 뿐 역사적 발전과는 별개로 존재한다.
이 즈음 아직도 분배와 성장이 별개의 대립항인양 목청 돋구는 이들 또한 마찬가지다. 시장없는 성장은 없다. 그리고 그 시장은 가처분 소득을 가진 대중이 있음으로써 형성`유지된다. 지금 한국사회는 대중의 소비여력이 바닥을 보이면서 그 시장이 시름시름 약화되고 있다. 한사람이 천만원을 쓰는 것보다 천명이 만원씩 쓰는 것이 시장을 살리는 길이고 산업을 발전시키는 길이다. 그런 시장을 유지시키자면 사회적 재화의 합리적 분배없이 불가능하다. 성장을 위해서도 이제 분배는 더 이상 늦출 수 없는데 소위 지도층에 속한 인사들 속에서도 여전히 분배는 좌파, 좌파는 빨갱이 하는 식의 굳어진 편견의 껍질에 갖힌 이들을 만나야 하는 현실은 참담하다.
올해는 제발 구각을 벗고 유연한 사회로 거듭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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