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불안의 실체
노후불안의 실체
  • 홍승희
  • 승인 2005.0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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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륙도 사오정 등의 신조어를 낳고 있는 조기퇴직 위기감과 그로 인한 중산층의 소비지출 위축으로 내수경기가 살아나지 못한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달리 말하면 이 불안감을 해소하지 않고는 내수부진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얘기다.
따라서 경기회복을 위해서도 이 문제의 해결은 매우 긴요해졌다.

그런데 당연한 것처럼 믿고 있듯이 지금 한국사회는 과거에 비해 조기퇴직이 만연된 사회인가 궁금하다.
나이 오십만 되면 안채 살림마저 곳간 열쇠를 며느리에게 물려주며 뒤로 물러나 앉을 만큼 조로한 사회였던 조선조까지의 얘기는 일단 접어두자.
광복 이후 60년 가운데 자영업자 아닌 봉급생활자의 퇴직 시기가 정년 다 채우도록 보장된 적이 실재했는지 기억을 되짚어 보지만 그 흔적은 너무 희미하다.

주변을 둘러봐도 정년 55세 이하인 직종 말고 정년까지 다 채운 사례는 매우 희귀해 회사가 이러저러 명목을 붙이며 그 공로를 치하했던 일은 분명 기억난다.
대다수는 어떤 방식, 어떤 명목으로든 도중하차했고 정년이 60대 이상인 임원급으로 승진한 극히 소수만이 오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3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고 그 이후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금융권을 구체적 사례로 살펴보자.
외환위기 이후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명예퇴직 바람이 거세게 불며 부자연스럽게 조기 퇴직한 경우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 이전에도 임원급 승진이 안되면 55세 정년이 지켜졌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 55세 정년마저 모두가 다 채울 수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기억한다.
이사 승진이라도 하면 달라지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55세 정년이라도 다 채울 수 있으면 매우 안정적이고 행복한 직장생활을 한 경우로 인정됐던 것으로 알고 있다.
본인들도 편안하게 그 현실을 받아들인 듯하고.

그런데 지금 55세에 현역에서 물러난다면 매우 큰 노후불안증에 시달린다.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첫째는 수명이 매우 길어졌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듯하다.
퇴직 후 남은 여생이 매우 길다보니 같은 액수의 퇴직금이라도 심리적 안정도에서 큰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그 긴 시간동안 의지할 보장책이 절실한데 이에 대한 한국 사회의 준비가 너무 소홀했다.

물론 그동안 국민연금제도 도입했고 의료보험도 어쨌든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노후를 온전히 맡기기에는 불안할만큼 아직은 부실한 보호장치다.

둘째는 노년의 역할이 크게 변했다는 것이다.
과거 자녀의 부모 봉양이 당연시됐던 시대에는 그만큼 부모로서 동거하는 어린 손주들의 양육에 동참하며 할 역할도 컸다.
그러나 결혼과 동시에 독립된 생활을 꾸려가는 핵가족 형태가 보편화됐고 조부모보다는 사교육에 아이들을 맡기는 게 일반적이다.
실상 전반적인 결혼 연령이 높아지면서 노년의 부모세대와 손주 세대의 연령차가 커져 이들을 돌보기에는 체력적으로도 어려움이 커진데다 가족수가 단촐해지다보니 다른 손을 더 빌릴 여지도 없다.

셋째는 이런 사회적 변화 못지않게 지금 노년세대가 과거 고율 성장시대 높은 이자소득과 부동산 가격 폭등과 개발붐에 의한 높은 차익에 맛들인 세대라는 점도 저성장 시대로 접어드는 지금 노년의 생계불안감을 더 증폭시키고 있다.
앞으로 이자율이나 물가상승률은 분명 과거보다 매우 낮아질 것이지만 여전히 과거 고율의 물가상승에 대비할만큼 재화가 준비되지 못하면 불안을 느낀다.
너나 없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게 된다.

정부는 올 한해 경기회복에 올인하겠다고 나서지만 이런 불안을 잠재우지 못하고는 내수경기를 조속히 회복하기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아직 믿음을 주지 못하는 사회보장제도를 보완 손질해야 하고 노인들에게도 재교육과 새로운 인생설계가 가능하다는 자신감을 회복시켜줘야 한다.

청년세대만이 우리의 미래는 아니다.
노인들에게 남은 20`30년 역시 코앞의 미래임을 인식해야 한다.
물론 노인세대도 지금의 불안이 확실한 근거를 가진 것인지 스스로 돌아봐야겠지만 그 이전에 정책이 할 몫은 우선 제대로 하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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