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의 대부업 탈세 사냥
국세청의 대부업 탈세 사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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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세청이 매우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다. 대기업과 오너 일가 등의 거액 변칙 탈세를 들추어내는 것뿐만 아니라 사채업자 등 민생침해 탈세자에 대한 조사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지간한 월급쟁이들 다 쉬는 개천절에도 검찰 등과 함께 불법 사금융 일제단속을 벌여 불법 대부업자에 대한 과세자료를 물경 3998건이나 넘겨받고 분석에 들어갔다는 발표가 있었다. 또 이들 가운데 세금 탈루혐의가 큰 불법 대부업자 76명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각종 정책의 재원 부족으로 벽에 부딪친 박근혜 정부 입장에서는 묻혀있던 새로운 세원을 포착하는 일도 급하겠고 정치적 국면이 어수선할수록 민생을 앞세운 행보가 더 긴요할 터이지만 이유야 어떻든 이런 일에 대한 국민적 반응은 일단 긍정적일 게 분명하다.

불법 대부업자들이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에게 받아내는 높은 이자나 중개수수료가 살인적인 수준인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이들에 대해 그 막강한 공권력이 이제까지 수수방관만 한 것은 아니겠으나 여전히 활개치고 있는 불법 사금융의 위세가 꺾인 적은 별로 없다.

한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 힘든 고율의 이자에도 불구하고 불법 사금융에 기대야만 하는 영세 서민들의 자금수요가 꾸준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급전이 필요할 때 공금융이 기능해 줄 수 있다면 가장 바람직한 일이지만 신용 상태가 좋지 않은 이들에게 돈을 빌려주라고 누가 강요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니 사금융의 존재는 지역단위 혹은 혈연단위의 사회 공동체가 무너진 현대 사회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개인적으로 잘 아는 한 노인은 한 때 극빈층으로 전락했다가 주변 지인들의 도움으로 그 상태를 벗어난 경험이 있다. 그런데 그 분이 극빈층에서 벗어나는 데는 사금융이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고등학교 동창들이 뒤늦게 소식을 듣고 계를 모아 1번으로 계를 타게 해줘 작지만 목돈을 쥐게 되자 시장에 좌판을 펴고 장사하는 노점상들을 대상으로 소위 일수놀이를 몇 년 해서 그 극빈상태를 벗어나 비록 달동네일망정 조그만 가게 하나를 낼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불법 대부업체들에 비하면 낮은 이자이지만 일수 돈이라는 게 예나 지금이나 결코 만만치 않은 이자를 물게 돼 있다. 그러니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궁핍한 시절을 버텨왔던 그 분으로서는 양심의 갈등도 적잖이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당장 자식들에게 하루 세끼를 제대로 먹일 수 없는 형편에서 벗어나는 길은 그 뿐이었다고 토로한다. 따라서 이자 비싼 일수 돈을 빌려주면서도 시장 바닥에 좌판 깔고 장사하는 이들이 그 부담을 어떻게 견뎌낼지 늘 걱정스럽더란다.

그런데 일수 돈을 빌려 쓴 노점상들은 오히려 “갑자기 가족에게 수술을 해야 할 큰 병이라도 생기면 돈은 급한데 가게도 없는 우리 같은 사람에게 돈 빌려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고마워해서 놀랐단다. 실상 노점상들이야 좌판 걷고 그 시장에서 사라져버리면 어디 가서 돈을 되찾을 방법도 없으니 일수 돈마저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요즘이야 주민등록번호가 있어서 불법 사채업자들도 어떻게든 채무자를 추적해 찾아내지만 전산시스템이 발전하기 전에는 그런 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명색이 경제기자인 필자마저도 사채라면 아무 신용도 없는 이들도 돈을 빌릴 수 있으리라 여겨왔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그 노인을 통해 새삼스럽게 알게 됐다.

그때로부터 몇 십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은 존재한다. 공적 부조든, 사적 부조든 시대별로 나름대로의 사회 안전망이 존재해왔지만 기존 사회 공동체는 해체되고 새로운 사회안전망의 구축은 여전히 미완인 시대다. 앞으로도 완벽한 사회안전망이 구축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니 급전이 필요한데 돈 빌릴 곳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를 서민들이 완전히 사라질 수도 없을 것이다. 다만 사회가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 아프면 누구라도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시스템을 구축하고 공금융 영역에서도 불법 사채업자들의 부지런함만은 본받아서 신용이 부족한 이들에게도 안심하고 복잡한 절차 없이 소액을 빌려줄 수 있는 시스템을 연구해 볼 일이다. 물론 쓸데없이 도덕적 해이를 불러올 사후 빚 탕감 따위를 함부로 하지는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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