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제 발등, 남의 발등 모두 찍은 기아차 노조
[데스크 칼럼] 제 발등, 남의 발등 모두 찍은 기아차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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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전수영 기자]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이 1심에서 통상임금에 대해 일부 승소하면서 노동자들은 환호했다. 몇 년간 노사 양측이 물러섬 없던 통상임금 논의가 법원의 판결로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전개될 것으로 보였다.

통상임금은 초과근로를 제공할 때 가산임금을 산정하는 기준이 된다. 따라서 잔업을 하거나 야근을 할 경우 통상임금이 높을 경우 좀 더 많은 초과근무수당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렇다보니 노동자들에게는 통상임금의 범위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기아차 노조가 소송에서 일부승소를 이뤄내면서 노조원들은 상당히 들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기업이 '땅 파서 장사하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갑자기 늘어난 비용 부담을 기업이 고스란히 안고 갈 리가 없다. 어떻게 해서든 이를 만회할 요소를 찾기 마련이다. 실제로 기아차는 1심 선고 이후 한 달도 채 안 지나서 잔업을 없애고 특근을 줄이겠다며 맞대응에 나섰다. 시장 상황도 좋지 않고 1조원가량의 손실을 입을 수 있는 상황에서 기아차가 내놓은 특단의 조치다. 이로써 기아차 노동자들이 받는 실질임금은 기대와 달리 크게 많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려스러운 것은 기아차의 이 같은 결정이 기아차로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노동계가 기아차 통상임금을 계기로 연이은 소송을 준비하고 있어 해당 기업들도 기아차와 같은 대책을 마련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전체 비용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통상임금 확대는 기업의 존폐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잔업과 야근이 많은 기업들은 임금 상승으로 인한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력을 줄이거나 생산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강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자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진행한 통상임금 소송이 별 소득 없이 끝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칫 일자리가 줄어들거나 현재보다 높은 노동 강도로 되돌아올 수도 있는 것이다.

1970년 11월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고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를 시작으로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겪으며 노동계는 힘을 키웠고, 이제는 회사 측과 테이블에 앉아 협상을 하는 동등한 지위를 갖게됐다. 아직은 노사 간 간극이 크지만 해마다 임금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노동계의 힘이 커질수록 더욱 필요한 것은 ‘동지 의식’이 아닐까 싶다. 자기 살자고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줘서는 절대 안 된다.

법원이 통상임금 판결을 내린 후 잘 됐다는 생각과 함께 우려가 있었다. 기아차 노조가 자기 발등만 찍는 게 아닌 다른 이의 발등까지 찍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현실이 됐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더 큰 우려가 생긴다. 노사 양측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공멸의 길로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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