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정보의 신용도 유감
신용정보의 신용도 유감
  • 홍승희
  • 승인 2003.06.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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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사회’라는 슬로건이 등장한지 몇 년만에 신용카드의 무절제한 사용으로 개인신용불량자는 급증했고 기업신용정보는 여전히 신뢰받지 못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다. 신용사회는 여전히 ‘지향해야 할 이상’일 뿐인 것이 현재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개인 신용불량자가 급증하면서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개인신용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 모든 금융기관이 공유토록 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계획대로라면 일단 주홍글씨가 새겨진 개인은 철저히 금융시장에서 격리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반대의견도 나오고 있다. 현재 신용불량자로 몰린 개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소액 여신의 상환불능상태에 빠진 젊은이들이라는 점에서 특히 이 계획이 가진 위험성을 경계하는 목소리들이 많다.


요즘 전국을 시끌벅적하게 만들고 있는 교육정보시스템 NEIS와 더불어 개인신상정보의 집중이 초래할 사생활 침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지만 금융신용정보의 경우는 개개인의 도덕적 해이에 따른 책임이라는 점에서 조금은 다른 시선을 받고 있다. 그러나 사생활 보호 차원을 떠나 국가경제적 관점에서 봐도 금융신용정보의 집중은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사안이다.

현대사회에서 신용창출이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는 것은 사실상 사회생활을 불가능하게 하는, 한마디로 사회로부터의 퇴출을 의미할 수도 있는 중차대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만큼 개인신용정보가 지워지지 않는 주홍글씨가 되어서는 안된다.

신용정보 집적대상자 선별이나 자료 보존기간 등이 섬세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채 섣부르게 시행하다가는 거센 저항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이미 숫적으로 전국민의 10%에 육박하는 신용불량자들을 모두 금융시장 밖으로 몰아냈을 때 국가 사회적으로 나타날 문제점들을 신중하게 살펴야 한다. 또한 기업 신용도와 개인 신용도 평가 사이에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여지는 없는지도 점검해봐야 한다.

현재 국내의 기업 신용정보나 투자정보에 대한 신뢰도는 매우 낮은 형편이다. 최근 분식회계 의혹이 여기저기서 불거지는 것도 그동안 기업 신용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단적인 예다.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런 리스크를 예보하지 않는다.

유동성 위기가 임박한 카드사들이 발행한 카드채의 평점은 한결같이 A를 유지하고 있다. 신용평가회사들에 대한 시장의 신뢰도가 높아지기 어렵게 하는 사례의 하나다. 국내 신용평가회사들에 대한 낮은 신뢰가 외국 평가사들을 자꾸 국내로 불러들이게 한다.

금융기관들이 현재 겪고 있는 예대 불균형 상태도, 여신 편중현상도, 부동산담보대출 위주의 여신 관행도 모두가 다 결국은 제대로 된 신용평가를 못하는데서 발생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현재의 시중 자금구조가 심각하게 뒤틀려 있는 것도 금융기관들의 신용평가 능력 미비에 일정 정도 책임이 있다.

중소기업들은 지금 심각한 자금난을 겪고 있다. 그러나 이들 중소기업의 신용은 제대로 평가받을 길이 없다.

대기업들은 자금 여유를 누리며 국가적으로 부동산 버블을 걱정하는 요즈음도 부동산 매입에 열올리고 있다. 그러는 사이에 금융기관들은 재계의 입김에 따라 내부 정책을 조정하는 위치로 전락해가고 있다. 자금 초과수요가 발생하곤 했던 예전과 달리 요즘은 대기업의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신용평가 능력을 기르지 못한 금융기관들이 자초한 결과다.

자금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한 중소기업과 개인들은 갈수록 사금융시장으로 밀려나가고 살인적 고금리의 불법 대금업자들에 의해 삶을 저당잡히는 기막힌 상황까지 가게 된다. 이것이 현재 마지막까지 몰린 적잖은 수의 개인신용불량자들의 모습이다.

제대로 된 신용평가야말로 현재 한국경제의 구조적 왜곡을 해소시키는 시발점이다. 정부도, 감독당국도 제대로 된 시장경보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시장을 이끌어가야 할 주인공은 다름아닌 금융기관들이며 그들을 뒷받침해야 할 어시스트가 신용평가기관이다.

제대로 된 신용평가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금융업 종사자들과 금융당국의 진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사회가 지금 신용사회로 가기 위한 심한 성장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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