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시스템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 서울금융신문사
  • 승인 2003.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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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사회가 갑자기 산업사회로 탈바꿈할 수 있을까.

최근 금융시스템 변화에 대한 논의를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든다.

얼마 전 재정경제부 변양호 금융정책국장은 한 간담회에서 “시중 유동성이 차입성 기관인 은행, 보험사에만 집중돼 있는 것이 문제”라며 “앞으로 금융시장을 주식투자 중심의 비차입성 직접자본시장 중심으로 바꾸는 데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다. 사상 유례 없는 저금리 시대에 왜 시중 유동성이 은행에만 몰리는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부족해 보인다.

시중 돈이 은행으로 몰리는 것은 직접금융시장의 위험도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SK글로벌 사태와 카드채 문제가 직접적인 요인이 되긴 했지만 이는 우리 직접시장 시스템이 그만큼 취약함을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외환위기 당시 은행들은 ‘나라를 망쳐 먹은’ 주범 취급을 받았다. 부실기업들에게 과도한 차입금을 제공했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계기로 정부는 은행을 접수하고 은행중심 금융시스템을 영·미식 직접자본시장 중심으로 재편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 결과적으로 돈은 다시 은행으로 몰렸다. 위험이 큰 직접시장을 기피하기 때문이다.

직접금융시장은 장점이 많다. 시장메커니즘에 따른 효율적 자원배분이 가능하고, 투자자의 위험분산이 이루어지며 은행과 기업의 대규모 동반 부실화 가능성도 작다. 그러나 직접금융시장이 제대로 운행되려면 기업회계의 투명성, 외부감사제도의 선진화, 신용평가기관의 성숙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러한 시스템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영국과 미국의 직접자본시장은 수 백년간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이루어진 진화의 산물이다. 그러함에도 최근 미국은 엔론사태 등의 발생으로 시장의 취약한 부분을 어떻게 보완해야 할 지 고민에 빠져 있다.

우리경제는 70년대 압축고도 성장에 대한 성공신화를 밑천 삼아 이 시스템을 단 몇 년만에 이루려고 노력중이다. 그러나 모든 성장 과정이 그렇듯이 거쳐야 할 일은 반드시 거치기 마련이다. 이런 중간 단계 없이 곧바로 완성단계에 이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외환위기 직후 우리 금융시스템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많은 논의가 있었다. 당시 세계금융시장 추세로 봤을 때 영미식 시장중심 금융제도로 발전되는 것이 바람직하긴 하지만 단번에 정착시키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은행중심 금융제도가 가지는 일부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자는 제안이 있었다. 현 시점에서 다시 한 번 귀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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