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56만원과 GNP 2만달러 시대
최저임금 56만원과 GNP 2만달러 시대
  • 홍승희
  • 승인 2003.07.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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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앞당기자는 새로운 국가적 목표가 설정됐다. 노무현 대통령은 분명히 임기내에 2만달러 시대를 맞을 기초를 다지겠다고 말한 것으로 보이지만 각종 매스컴은 연일 임기내 2만달러 도달을 약속한 듯 요란스럽다.

어쨌든 ‘대망의 80년대’를 지나고 OECD 가입에 이은 IMF시대를 거쳐 간신히 90년대 중반의 GNP를 회복한 현재 새로운 국가경제적 목표가 생긴 것만은 분명하다. 그것도 명확한 숫자로 제시됐다. 목표도달 시점이 5년 후가 될지 아니면 10년 후가 될지는 알 수 없으나 점프업이 필요한 사회적 조바심이 그런 숫자로 제시된 것일 터이다.

분명 GNP 1만달러 전후의 경제상황은 어느 사회에서나 매우 불안정한 수준임이 분명하다. 이 고비에서 그 전까지의 빠른 성장이 빠른 침체로 반전되거나 과거의 빠른 성장이 미래의 발목을 잡은 전례는 이미 여러 나라에서 나타났다. 이 상태에서 경제체질의 질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그런 여러 나라의 전철을 밟을 개연성도 그만큼 커지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어떤 경제모델로 갈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는 현상은 극히 자연스럽고도 바람직하다. 경제성장에 있어서 중대한 고비에 선 것은 확실하므로. 게다가 국가사회적으로는 공통의 ‘희망’이 생긴다는 점에서 긍정적 기대를 갖게 한다.

문제는 그런 논쟁이 각각의 이해집단간 속내를 숨긴 채 각종 자료들이 아전인수격으로 인용되는 상황을 다수 국민들이 얼마나 이해하고 선택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현재 제시되고 있는 희망이 과연 모든 국민들에게 진정한 희망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자칫 목표 숫자에 집착하다 목표지점에 다다랐을 때는 미래를 위해 마련돼 있어야 할 시스템이 망가져 희망이 삽시간에 절망으로 바뀌는 위험을 초래하게 된다면 그 목표 달성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웃나라 일본이 지금 10년째 장기불황을 겪고 있다. 기술수준에서 결코 세계 어느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는 그들이 그 긴 불황의 터널을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80년대에 일본의 경제구조를 두고 “나라는 부자지만 국민들은 가난하다”는 평가가 나온 적이 있다. 따라서 소비를 할 줄 모른다기보다는 소비할 여력이 애당초 그리 크지 않았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그런 일본국민이기에 10년 불황을 견뎌내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달리 보면 바로 그런 구조 때문에 장기불황으로부터 탈출이 어려운 것은 아닌지 뒤집어 생각해 볼 여지도 있다.

결국 개개 국민의 소비 여력이 없이 구조적 불황상태에서 벗어나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문제는 어떻게 그 소비 여력을 생성해내느냐다. 소비 여력을 키우는 방법으로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장기적으로 건강한 국가경제의 토대를 마련하느냐 아니면 단기 성장 후의 시스템 붕괴를 초래하느냐를 결정짓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금 재계에선 소비진작을 통한 정부의 경기 활성화대책을 기대하는 목소리들이 종종 터져나오고 있다. 그러나 6월말 현재 개인신용불량자가 322만명에 달하며 증가율은 다소 둔화되고 있다지만 아직도 계속 증가하는 추세다. 같은 시점에서 실업률은 3.3%로 다소 낮아지던 추세가 반전되어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부채 증가를 통한 소비 진작은 경제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짓이 될 수밖에 없다. GNP 2만달러면 1인당 월 193만원 가량의 소득이 된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5인 가족 기준 최저임금은 56만원으로 정해졌다. 최저임금 노동자 가족의 현재 1인당 소득은 11만원 선이라는 얘기다. 1만달러와 2만달러 사이의 간극치고는 너무 크다.

카드빚에 몰려 자살하는 숫자가 계속 늘어나는 한편에선 해외골프여행객이 근 30%씩 증가하고 있다. 명품 시장 외에는 거의 모든 유통상가들이 개점휴업 사태를 빚고 있지만 애완견을 가족 휴가여행에 동반하기 위해 60여만원씩의 추가비용을 지불하는 계층도 엄존하는 것이 현재 한국 사회다.

이보다 더 격차를 벌인다면 다수 국민들에게 있어 GNP 증가는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렇게 하고도 지속가능한 성장모델이 나올 수 있는지부터 따져보며 경제모델 선택의 논의를 시작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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