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대통령 해외순방을 보는 눈
[홍승희 칼럼] 대통령 해외순방을 보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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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해외순방에 세계인의 관심이 쏠려있지만 국내에선 연일 제1야당의 막말로 상처받고 있다. 워낙 한국 대통령의 방문을 바라는 나라들이 많아 다 소화해내지 못하고 외교부가 조율에 고민이 많다는 얘기도 들릴 만큼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커진데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세계의 관심도 큰 현실이 국내 정치권에는 별 의미가 없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인적인 순방일정을 소화하며 문재인 대통령은 오슬로 포럼에 참석해 한반도 평화구상을 차분히 밝혔다. 거창한 비전을 제시하기보다는 한국 국민들의 일상에 스며든 반평화를 평화적 삶으로 바꿔나갈 목표를 제시함으로써 정치적 함의 대신 국민생활의 질을 높이는데 초점을 맞춘 강연이었다는 점이 여느 정치인의 행보와 차별화된 모습을 보였다.

받는 관심에 비해 소박한 내용을 말함으로써 오히려 그 진정성이 돋보였다. 그러나 그 내용은 실상 분단 70년이 쌓아놓은 갈등의 크기를 생각할 때 결코 가벼운 내용이 될 수는 없다.

분단 70년이 토해낸 갈등의 골은 한국사회 내부의 분열로까지 확대 재생산되며 수많은 상처를 만들었고 또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여야를 나눈 바탕도 우리 현실을 판단하는 이념의 차이이고 그 차이가 지역 권력을 나누며 지역갈등으로 자라났다.

겉으로 보기에는 남북한 정치체제의 차이와는 결이 다른 듯 보이는 동서갈등에는 그 갈등을 유도해내기 위해 남북갈등을 국내로 끌어들인 역대 정권들의 흔적이 너무 강하게 남아 있다. 그 결정판이 어쩌면 5.18민주항쟁이 아니었을까 싶다.

최근 어느 젊은 여가수가 전라도 사람은 뿔이 나고 어쩌고 했다고 해서 인터넷 상에서 시끄러웠다. 그 여가수의 머릿속 전라도는 필자의 어린 시절 북한 사람들에게 가졌던 선입관과 비슷하지 않은가 싶어 우리의 역사가 지금 거꾸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정치권이 사회적 갈등을 녹이고 치유함으로써 봉합하는 대신 오히려 그 갈등을 부추기고 심화시켜 나감으로써 특정 지역기반 정당의 생명력을 유지시키고자 한 그 유산을 젊은이들이 비판없이 받아들인 결과가 그 여가수의 노랫말이었던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동서갈등의 골은 그만큼 깊다는 반증이어서 남북 분단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병들게 했는지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최근 한 연예인의 강연료를 갖고도 정치권에서 공격이 이어진다. 그런 정치권의 공격수 노릇을 하는 메이저언론의 행태도 한숨 나올 만큼 저열하지만 다른 곳도 아닌 자본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해온 보수야당이 연예인의 높은 몸값을 공격하고 나서는 그 반자본주의적 의식에는 그저 암담할 뿐이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는 그야말로 인기로 몸값이 결정되고 그런 이들에게 젊은 세대는 열광한다. 그야말로 자본주의의 꽃이라 할 그들을 향해 높은 몸값을 비난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본주의를 온몸으로 옹호해온 보수야당이 할 일은 아닐 성 싶다.

혹시라도 보수야당의 그 보수가 조선시대로 회귀하고 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연예인을 계급적 하위로 간주해서 하찮은 그들의 몸값이 높아지는 것을 괘씸하게 본다면 말이다.

설마 그럴 리는 없다고 믿지만 어떻게 젊은이들이 정치인으로 출세한 자신들을 제치고 연예인에게 더 열광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면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것은 자본주의가 아니라 왕정시대의 계급주의일 테니까.

어떻든 그런 제1야당의 비난 공격이 특정 연예인을 향하는 데는 그런 괘씸함과 더불어 그 연예인이 이제까지 보여 온 정치적 성향과 관련이 있는 모양이다. 특별히 대사회적 메시지를 말한 적도 없지만 단지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 사회를 봤다는 것만으로 그의 정치적 성향을 단정 짓는 태도도 분명 한국 정치의 치기를 여지없이 보여주는 질 낮은 짓이다.

우리 사회의 갈등은 이미 수많은 이들을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면 죽음으로 몰아넣었고 정치적 갈등을 증폭시키며 새로운 증오의 문화를 낳는 단계에 이르렀다. 전혀 무관할 것 같은 증오범죄, 묻지마식 범죄의 바탕에는 우리 사회의 갈등을 대하는 비틀린 정서가 깔려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정치적 갈등을 대화로 풀 능력이 부재한 낮은 정치수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우리 사회의 깊어져가는 갈등의 골을 펴 나가는 과정이야말로 동서의 갈등을 넘어 남북 분단의 상황까지 풀어나가는 ‘평화’라는 열쇠의 첫 번째 단계다. 평화는 결과로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열어가는 열쇠임을 문대통령의 오슬로 강연이 다시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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